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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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0.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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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리의 횃불은 안목眼目이 있는 자에게는 보일 것이며, 
이근耳根을 갖춘 자는 들을 것이다.

- 일러두기-
황경환 박사께서 2021년 7월 24일 ㈔21세기불교포럼 정기법회 시 ON/OFF 라인으로 강의하신 말씀을 본지가 편집하여 10여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황경환 박사●사단법인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황경환 박사●사단법인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사성제.팔정도.12연기(1)

■들어가며
먼저, 대반열반경의 부처님 말씀을 중심으로 ‘방일하지 말라’는 「법구경」 제2품 21과 「증지부(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9장 방일 등의 품, 그리고 실참 수행의 핵심인 ‘37보리분법’등을 설명하고 있는 「장부(디가 니까야)」 제16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으로 5분 명상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방일하지 않음은 불사로 가는 길이요. 방일하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방일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방일하면 이미 죽은 것과 같으리라. 이러한 이치 상세히 알아서 지혜로운 님은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음에 기뻐하고 고귀한 님의 행경을 즐긴다. 그러면 방일하지 않음의 수행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37보리분법이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러한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네 가지 바른 노력, 네 가지 성취 수단, 다섯 가지 기능,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여덟 각지의 성스러운 팔정도, 즉 중도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법들을 잘 호지한 뒤 받들어 행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공부 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의 길이 전해지고 오래 세상에 머물게 해서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반열반을 3개월 앞두고 반다가마의 자빨라 탑묘에서 생명의 끈을 놓으려 하시니 천지가 크게 진동하였다고 경전에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노라.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 처로 삼았노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思惟를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을 끝을 만들 것이다.” 
부처님께서 3개월 안에 반열반에 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예고하자 아난다가 가장 슬퍼하면서, 세상에 부처님이 더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과는 헤어지게 마련이고, 없어지게 마련이고,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간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공양을 생애 마지막으로 받은 세존께서는 쭌다의 공양이 잘못되었다는 그의 죄책감을 없애주기 위해 이렇게 감흥어를 읊으셨습니다. “베풂에 의해서 공덕은 증가하고 제어에 의해서 분노는 쌓이지 않네. 지혜로운 자 사악함을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서 열반을 얻는다.”
■강의 주제 ⇒ 4諦,8正道,12緣起
오늘의 강의 주제는 “죽음을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4諦,8正道,12緣起”입니다. 그리고 부副 주제는 “불사에 이르는 이 진리의 횃불은 안목眼目이 있는 자에게는 보일 것이며, 이근耳根을 갖춘 자는 들을 것이다.”입니다. 
여기서 ‘4諦,8正道,12緣起라는 주제 앞에 무엇이 전제가 되어 있는가 하면 ‘불사에 이르는 진리의 횃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강의를 경청하기에 앞서 품어야 될 의심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간단명료한 ‘4諦,8正道,12緣起가 과연 무엇이기에 죽음을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의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과연 그런가? 라는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무명 또는 무지를 밝혀 생사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의 횃불”이라는 주제에 대해 저는 99%가 아니고 100%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대 인도의 빠알리 어로 “아빤나까 빠디빠다(apaṇņka paṭipada)”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실은 어렵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간단명료하게 여러분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데, 다만 여러분들의 마음이 태어난 존재의 생사生死에 대한 관심의 크기가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제가 어려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우리가 평상시에 소통될 수 있는 언어로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여러분들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제 강의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이게 두말할 나위가 없는 실존적 현실입니다. 하지만 깊게 사유한다면 죽음을 향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연해서 말씀드리면 하루의 삶이라는 이 삶을 팔아서 여러분들은 죽음을 사고 있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이 말은 열심히 죽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걸 누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운명은 반드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늙고 병들고 죽고 아무리 사랑스러운 사람일지라도 헤어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이 몸뚱이를 “나다. 나의 것이다. 나의 자아다.”라고 고집하고 있지마는 이 몸은 에너지가 소진되면 놓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이 법회 장소에 오시기 전에 또는 평소에 나라는 존재가 도대체 뭔가?(what am I?,  Where do I come from?  Where am I going?)에 대해 의심을 한번 해 본적이 있습니까? 
부모의 성관계를 통해 모태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찰나에 한 방울의 의식이 붙잡기를 하면 생명체가 움트기 시작한다는 게 중부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10달 만에 모태에서 나오며 첫 울음을 터트린 존재가 과연 나인가? 이 결과가 있기까지는 어떤 원인으로 해서 이런 태어남이 있게 되었는가? 그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비참하게도 하늘을 물고 도래를 흔든다 할지라도 늙고 병들고 헤어지고 죽음의 길로 질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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