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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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과 死를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 - 사성제·팔정도·12연기 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0.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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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 늙고 반드시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가?”

- 일러두기-
황경환 박사께서 2021년 7월 24일 ㈔21세기불교포럼 정기법회 시 ON/OFF 라인으로 강의하신 말씀을 본지가 편집하여 10여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황경환 박사​​​​​​​사단법인 -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황경환 박사사단법인 - 21세기불교포럼 공동이사장 ​​​​​​​​​​​​​​-초기불전연구원 선임연구원

사성제.팔정도.12연기(2)

누구나 태어나면 죽어야 합니다. 그 생로병사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4성제·8정도·12연기’가 죽음을 뛰어넘는 진리의 횃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가르침에 대해 의심을 품고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셨습니까?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십중팔구는 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겠습니다. 1642년에 태어나 1727년에 사망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고 수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은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무심코 바라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과는 왜 하필이면 땅으로 떨어질까? 왜 하늘로 날아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일까?” 
이 바보 같은 화두에 대해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을 것임에도 뉴턴은 누가 뭐라고 하든 틀림없이 여기에는 분명한 어떤 질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알아낸 것이 지구의 중력이 원인임을 발견하였고 이것을 설명하는 이론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우게 됩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뉴턴의 만유인력이 발견됨으로써 과학의 암흑기였던 중세시대를 환하게 비춘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립니다. 이후 20세기 과학의 거장이라고 하는 아인슈타인(1879-1955) 역시 “해가 뜨면 왜 이렇게 훤한가? 훤하다는 이 빛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품었습니다. 스승에게 물었더니, 이상한 학생이라고 오해를 받아 나중에는 학교에서 배척되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훤한 게 무엇인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화두였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1초에 삼십만 킬로의 광속으로 달리면서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일까?” 이러한 화두가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의 다발’이라는 과학적 증명을 얻게 하였습니다.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수여된 노벨물리학상은 광전효과, 즉 금속의 표면에다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발견한 것을 기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1905년에 물리학계의 기념비적인 특수 상대이론인 멈춰 있는 물체의 시간보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는 이론과 시간도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 에너지(E)는 질량(M)에 빛의 속도를 제곱(C²)한 결과물이라는 공식을 발표했는데, 이 학설은 원자 폭탄제조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천재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불교에 대한 관심도 특별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불교에는 장차 우주적 신앙에서 기대하게 될 특성들이 함축되어 있다. 불교는 특정한 신의 존재를 초월하며 독단(Dogma)과 신학체계를 회피한다. 또 불교는 자연과 인간의 영혼(soul)을 함께 아우른다.” 라고.
이와 같이 아인슈타인은 불교가 지구인의 신앙의 대상을 훨씬 뛰어넘어 범우주적 신앙으로 승화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과학의 암흑기인 2,600여 년 전에 위대한 고오타마 싯타르타는 “무엇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면 늙고 반드시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화두에 강력한 의심을 품고 화두를 참구하였습니다.
이 또한 바보 같은 질문 아닙니까? 똑똑한 사람들은 “야 임마! 태어나니까 당연히 죽지!”라고 말할는지도 모르지만,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아니야, 무엇 때문에 태어나면 태어난 존재가 반드시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가?” 라는 화두를 풀지 않고서는 내가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랑을 나누고, 내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 할지라도 오늘 하루를 살다가 오늘 하루를 죽어가는,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 처지라면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이 질문에 대한 강력한 의심이 없으면 지금 여기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와 같은 신세가 됩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렇다 해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출가한 스님이 되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남녀 간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비즈니스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대학교수 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다 하라는 겁니다. 
여기서 이 말에 대한 연결은 뒤에서 다시 하겠습니다만, 그래서 고오타마 싯타르타는 자신이 던진 삶과 죽음이라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어제 막 태어난 아들 ‘나훌라’와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공주를 두고 29살에 카빌라 바스투의 왕궁을 야밤중에 뛰쳐나와 6년간의 수행에서 겪어야했던 갖은 악전고투를 뛰어넘어 드디어 깊은 명상 속에서 숙명통(宿命通), 천안통(天眼通), 누진통(漏盡通)이라는 깨달음을 증득한 후 오늘의 강의 주제가 되는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12연기(緣起)의 법륜을 사부대중들 앞에 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죽음을 뛰어 넘는 대자유의 유일한 길이라고 천명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천명하신 이 진리의 횃불은 26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온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의 횃불로 찬연히 승화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큰 선지식이며 나의 스승이셨던 경봉 큰스님께서는 저희들에게 “하루가 24시간이면 8시간 잠자고, 9시간 일하고, 4시간 놀아도 3시간이 남는데 ‘나를 끌고 다니는 이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건을 한 번 찾아보라.”고 수없이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독일인의 사랑>를 쓴 저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종교학자이며 불교 학자인 막스 밀러(1823~1900)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을 행복한 ‘똥 돼지’라고 한 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또 경봉 큰스님께서는 비유해서 말씀하시길 “야! 옛날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면 어떤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그 집에 하룻밤을 묵고 가더라도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주인을 찾아 주인장 고맙습니다. 어제 잘 쉬었어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가는데,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몸 끌고 다니는 주인 한 번 안 찾아보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지금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금일일온풍화(今日日暖風和)하고 산층층수잔잔(山層層水潺潺)한데 하등효일(霞登曉日)하고 우과청산(雨過靑山)하니 두두에 비로요 물물이 화장세계(頭頭毘盧物物華藏世界)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어안이 벙벙하니, 또 뭐라고 덧붙여서 말씀하셨느냐 하면 “허공일점진소식 우주인간 기득지(虛空一點眞消息 宇宙人間 幾得知)”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허공에 이 엄지손가락으로 점을 한번 딱 찍었는데 이것을 아는 자 우주의 인간 가운데 몇이나 있는가라는 뜻인데요, 그 당시에는 저희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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