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새로운 병명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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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새로운 병명이 주는 교훈
  • 김순택(건공장군현양추진위원장/제주복지피부과)
  • 승인 2021.11.02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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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우리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동생 로히니 공주는 과거 전생의 악행 때문에 이생에서는 한센병에 걸렸지만 개과천선하여 병을 나을 수 있었다. 또 불경 가운데에는 한센병자 쑵빠붓다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우다나(優陀那經, 雜阿含經)에 “그 때 라자가하 시에는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사람 가운데 가장 곤궁하고, 사람 가운데 가장 비참한 쑵빠붓다가 살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가난과 곤궁과 비참함으로 표현되는 한센병자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므로 불행한 자 중에서도 불행한 자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선입관념으로 낙인(烙印)하고 차별하는 질병에는 한센병, 정신병, 전염병, 에이즈, 성병 따위가 있다. 특히 한센병은 불경과 성경(바이블)에서는 교화의 방향을 예시하고 있지만, 일제의 격리정책이나 최근 제주4·3연구에서는  저주의 대상(황상익 1999)으로 혐오하고 있다. 
 특정 질병에 대한 처벌(punishment), 배척(따돌림), 폭력과 학대, 고정관념의 시각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로써 병자들은 고독(은둔), 수치감, 정신적 고통, 무기력, 숨기기, 도움회피, 빈곤, 불건강, 위험행동에 시달린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의 원인은 잘못된 정보, 두려움, 책임 부담, 행정체계 미비, 치료에 대한 불신, 부정적 대응 등에 기인한 것이다. 

제주시도두2동 해안가에는 벵막이모르(病幕마을), 용다리새미, 구린질, 방사탑, 고넹이동산, 니을포, 흘천(屹川) 등은 구질막(救疾幕 또는 病幕)과 연관되는 지명들이 널려있다. 제3사수교의 남쪽서안에 <기건의 구질막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구질막이란 격리된 병자들을 위한 공동주거지를 말한다. 
지금은 사라진 고넹이동산의 바위절벽과 니을포에는 니을망(泥乙望)이란 여인이 한센병에 걸린 10살 난 자기 딸을 떠밀어 죽게 한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인데, 1445년 제주목의 첫 목사인 기건(奇虔, ?~1460)이 구질막을 세우게 된 동기가 된다. 

기건은 병자를 바닷가 무인지경에 내버리고 자폐를 기다리는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되자 목민관(牧民官)으로서 할 일을 찾아낸다. 그의 구라(救癩) 대책을 약술하면 ① 한센병은 천형병(天刑病)이 아니라 치료하면 낫는다는 믿음이었고, ② 삼읍(제주·대정·정의)에 한센병자를 위한 남녀별 전문입원시설을 마련하고 ③ 여기에 군역을 면제한 의생과 승려를 파견하여 구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보수를 주었으며 ④ 병자들에게 의복과 식량을 지급하고 약물(苦蔘元) 투약과 해수치료법(세창洗瘡 목욕)을 시행하여 ⑤ 치료에 가망이 없다던 이들의 태반이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보건정책은 기건의 주청에 의해 세종이 허락한다. 이는 한센병자를 국가에서 구료해줌으로써 가장 소외 계층에까지 통치자의 사랑의 손길을 이르게 한 국제적인 효시가 되는 일이었다. 대한나학회는 ‘세종(1397~1450) 얼굴’ 학회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구질막은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 사람과 사회가 맺는 휴머니즘과 공적부조(公的扶助)의 관계까지 담당한 것이다. 입을 옷과 청결과 남녀구별도 의약품 못지않게 소중했다. 기건이 세운 구질막은 현대적 개념으로 보아도 종말환자를 위한 호스피스가 아니라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상정한 ‘환자들을 위한 공동주거지’였다. 승려와 의생의 역할은 ‘구(救)’와 ‘료(療)’의 역할을 각각 담당했을 것이다. 의약과 의술제공이 의생의 책임이었다면, 의식주와 간병과 정서적인 문제는 승려가 도울 수 있었다. 그런 점은 오늘날의 공중보건의와 복지사 제도나 다름없다. 의사의 군 실역복무를 면제하는 대신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하며 군인보수 한도 내에서 보수를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당시 도내 의생은 14명에 불과했는데 적어도 의생 3명의 파견근무는 한센병자들을 위한 대단한 배려였고 탁월한 이사(吏事)였다고 생각한다. 

오성찬(1940~2012) 작가의 드넓은 소설세계에서 <푸른 보리밭>이란 작품처럼 질병의 모티프를 비중 있게 다룬 적은 없었다. 원래 <푸른 보리밭>은 《샘이 깊은 물》 1996년 12월호에 발표된 짤막한 소설인데, 1998년에 12편의 단편을 모아 다시 『푸른 보리밭』 단편집으로 나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병의 독특한 사회병리적 소재를 다룬 것이었다. 
이 소설은 ‘나’라는 특징적 개인인 피부과의사의 그럴듯하게 둘러대고 꾸며놓은,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나’라는 제보자로서의 자전적 고백인지 극적인 전개인지를 판별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다만 독자는 작가가 체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그려낸 우리 사회의 문제를 또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병자는 인간적 갈구와 행동을 통해 사람다운 삶의 조건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작가는 한 병자 가족을 치료하는 ‘나’라는 피부과의사가 역사 앞에서 느끼는 갈등과 처절한 갈등과 상처를 통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오성찬의 <푸른 보리밭>에서 다만 아쉬웠던 것은 병명이 바꿔진 2000년도 이전에 간행(1998)되었고 문학적 필요에 의해 사용했겠지만 금지된 병명이 31회나 올라와있다. 병자가 소송을 걸면 판금 내지는 전량 회수 또는 재판을 찍는 벌칙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용다리나 문디가 다녀간 곳에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조차 거짓말인 줄 알고 있다. ‘용다리’는 제주도에서, ‘문디’는 경상도에서 정감이 있어 싫지 아니한 지방어(사투리)로 남아있지만, 국민개도의 관점에서 병명의 변화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2000년에 ‘한센병’으로 고치는 법안이 통과되자 모든 사회적 용어나 법적 적용, 문학적 표현, 심지어 의학 교과서까지도 ‘한센병’으로 고쳐져 사용되고 있다. 나균을 처음 발견한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Armauer Gerhard Henrik Hansen 1841~1912)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병명의 개정으로 그나마 옛 병명으로 인한 혐오감이 대부분 사라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불경번역이나 해설서 또는 설법 내용에 있어서도 ‘한센병’으로 통일해야 옳다. 
 성한 우리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낙인찍지 말고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라 되어있고, 국내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입법이 추진되고 있으나 다만 ‘동성애’ 같은 성(性) 문화 때문에 지연되고 있을 뿐이지 법이 없어 한센병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이 세상의 부귀빈천을 모두 차별 없이 대하셨고 가장 쉬운 이야기부터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대중 가운데 유독 가난하고 불행한 쑵빠붓다가 말귀를 알아들으리라 생각하시고 네 가지 순서로 ① 보시에 대한 이야기, ② 계행에 대한 이야기, ③ 하늘에 대한 이야기, ④ 감각적 쾌락의 욕망으로 인한 위험과 타락과 오염을 여의는 공덕을 설하신 것이다. 이를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 한다. 
옛말에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고 한다. 경전은 곧 도가 수록되어 있고 성인의 심법과 인격이 들어 있는 것이다. 경전은 빈부귀천에 상관하지 않고 공부인으로 하여금 그 공부하는 방향로를 가르쳐 주신 것이니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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