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22)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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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22)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12.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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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마음을 집중하는 여러 가지 수행법을 고안했습니다. 40가지 사마타 수행주제 가운데, 내안의 몸과 마음의 활동을 탐색하는 가장 좋은 기술은 세존께서 몸소 실천하신 호흡법입니다. 
들숨날숨은 자궁에서 나올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 몸과 함께 있어서 자신과 떨어져 있는 그 밖의 수행주제들처럼 찾아가는데 힘들지 않습니다.  
호흡은 들숨날숨[ānāpāna, 아나빠나]이고, 지금·여기(코끝)에 현전하는 호흡을 잊지 않고 그곳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나가는 의도가 사띠(sati)인데, 이 둘을 합쳐서 ‘아나빠나사띠’, 즉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라 합니다.
세존께서 탐욕, 애착과 같은 번뇌에 사로잡힌 상태를 일종의 심통心痛으로 간주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띠(念, sati)의 확립이라는 명상 기법을 개발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초기 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수행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빠알리 경장인 『맛지마 니까야(中部)』에 실려 있는 「출입식념 경」(M118)에는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연마하면 큰 결실이 있고 많은 이익이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연마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성취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연마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성취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연마하면 더 높은 앎과 해탈을 성취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아나빠나사띠’는 매우 중요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상윳따 니까야』에서  「들숨날숨 상윳따(S54)」 로 편성하고 20개의 경을 담고 있습니다. 『상윳따』  「웨살리 경」에는 “비구들이여, 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해서 삼매를 닦고 많이 수행하면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물게 되고, 나쁘고 해로운 생각들을 일어나는 즉시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청정도론』에는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은 모든 붓다, 상당수의 빳쩨까 붓다(Pacceka Buddha, 벽지불), 상당수의 제자들이 특별함을 증득하여 지금 여기에서 머무는 토대로서 다양한 수행주제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입식념 경」은 사왓티(사위성)에 있는 동쪽 원림의 녹자모 강당에서 설해진 경입니다. 이 경이 설해질 때 거기에는 사리뿟따 존자, 마하목갈라나 존자, 마하깟사빠 존자, 마하깟짜야나 존자, 마하꼿티따 존자, 마하깝삐나 존자, 마하쭌다 존자, 아누룻다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그 외 잘 알려진 장로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본경을 설하시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몸의 부정不淨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부정을 닦는 수행을 권장하셨습니다.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실 때 반달 동안 폐문하시고 나 홀로 명상을 하셨는데, 그 기간에 부정관 명상을 하던 비구들 60명이 몸에 대해서 전율을 느끼고 혐오스러워하고 넌더리를 내면서 칼을 들어 자결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율장』에 의하면, 자결을 한 비구들은 과거 생에 살생의 업 때문에 죽어서 지옥에 태어났지만 어떤 유익한 업 때문에 다시 금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세존의 문하에 출가하였는데, 세존께서 천안으로 그들이 지었던 원래의 나쁜 업이 익어서 죽음에 이르렀음을 살피시고 범부인 이 비구들에게 몸의 부정관 명상을 하도록 말씀하셔서 그들이 몸에 대한 집착을 여의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천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세존께서 이 자결 현장을 피하기 위해서 반달 동안의 나 홀로 명상에서 머무시다가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웨살리에서 수행하고 있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소로 모이게 하여 본경의 수행법을 설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비롯한 출가 수행자들이 깨달은 이후에도 주로 ‘아나빠나사띠’로 수행했다는 사실은    「웨살리 경(S54:9)」,  「아난다 경(S54:13)」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방불교에서도 ‘아나빠나사띠’ 수행은 사념처 내지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주류입니다. 세존께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sati)’을 통해서 증득한 초선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필자의 수행경험에 비추어 이 한 가지의 수행만으로 본 삼매를 증득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호흡명상은 자의적으로 호흡을 조정하는 호흡 훈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과정에 그 호흡의 흐름이 ‘짧든 길든 무겁든 가볍든 거칠든 부드럽든’ 이를 인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의식하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떤 혼란도 없이 호흡에 주의를 집중하는 명상법입니다. 
내안의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것은 일으킨 생각, 예컨대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사량思量으로 일어나는 현재의 느낌과 갈애 등을 자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매우 소중한 명상기법입니다. 이와 달리 요가(Yoga의) ‘호흡 조절’(쁘라나야마, prānāyāma) 수행법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인 호흡을 조절하고 강화하는 수행이라는 점에서 ‘아나빠나사띠’와는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호흡 조절’은 몸의 조건인자인 호흡을 고요하게 다스림으로써 육체적인 몸의 평정을 유지시키는데 역점을 두나, ‘아나빠나사띠’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여 고요함에 이르게 합니다.
누구든지 일상에서 힘든 일을 겪습니다. 이럴 때 지혜로운 이들은 혼자서 몇 분 동안 숨을 깊고 조용히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마음의 평온을 회복합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쁘라나(prānā)라고 불리는 숨결을 세존께서 “마음을 실어 나르는 수레”라 말씀하신 뜻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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