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 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5) - 도는 낳고 기르고 생존케 하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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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 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5) - 도는 낳고 기르고 생존케 하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 글·고은진 철학박사
  • 승인 2022.01.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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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혼(魂)이라 하고, 육체적인 측면을 백(魄)이라 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흩어지고 백은 땅에 묻힌다. 그래서 사람이 임종하고 입관할 시에는 평상 시 입었던 옷을 세 번 털면서 복(復)을 세 번 외친다. 떠나간 혼이 다시 돌아오라는 기원이 담긴 의식이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혼과 백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은 이 혼백을 싣고 있어서 사려 망상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능엄경에서는 “정신과 혼백이 교대로 분리되기도 하고 합치되기도 한다” 고 언급한다. 그런데 이 혼백을 하나로 아우르게 되면 움직이면서도 항상 고요하여 성성(惺惺)하지만 적적(寂寂)하여 생각이 어지럽게 일어나지 않게 된다. 스스로 체득한 도가 이와 같이 되며 동정(動靜)이 둘이 아니고 잠을 자건 깨어 있건 한결같게 된다. 
기(氣)를 오로지하여 부드럽게 이르는 경지는 바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하여 허망하게 요동치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음은 평안해지고 기는 저절로 부드러워진다. 특히 어린 아이는 기운이 맑고 오롯하여 부드럽다. 어린 아이는 무심한 가운데 우는 까닭에 아무리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노자에서 어린 아이를 예찬하는 것은 어린 아이의 무심함, 유연함, 생명력 때문이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다. 어린 아이의 천진함과 부드러움에는 이러한 놀라운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10장에는 특히 기(氣)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구절로 하여 노자는 한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삼고 있다. 한의학에서 기(氣)는 건강과 생명을 재는 아주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도 이러한 흔적이 많다. ‘기가 차다’든가 ‘기가 막히다’든가 하는 말들이 그 예이다. 사람은 기가 막히면 죽는다. 건강한 사람은 기가 잘 전달되고 평탄하다. 
노자적 수련은 기수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를 잘 수련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장생술이다. 이러한 기수련을 바탕으로 당나라에 와서는 황로학의 발전으로 바야흐로 도교의 황금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노자의 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판본이 하상공본이다. 
어린 아이들은 기가 맑고 충만하다. 어린 아이들은 세상을 바라봄에 이념이나 편견을 고집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을 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이솝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이와 같은 어린 아이의 맑고 천진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이 장에서는 현묘한 거울이라 표현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마음은 깨끗하여 티끌이 없기 때문이다. 
현묘한 거울은 마음이 허공처럼 잘 닦여진 거울을 일컫는다. 자연의 허공처럼 인간의 마음도 허심하게 잘 닦여지면 혼백과 음양의 왕래를 사심없이 읽을 수 있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마음상태를 여여(如如)하다고 한다. 여여(如如)는 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파악되는 상태를 말한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현묘한 거울은 원융자재하게 초탈의 입장에서 세상을 읽기 때문에 아상(我相)에 얽힌 알음알이의 지식을 내려놓아야한다. 그것은 명백히 사방의 일에 통달한 무지(無知)의 지(知)로 대상을 그대로 비춘다. 이는 숭산 스님께서 말씀하신 “오직 모를 뿐”이라는 화두처럼 무지(無知)로 툭 내려놓았을 때 부처의 근본적 마음에서 나오는 지(知)가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노자는 또한 어린 아이 외에 여자를 높인다. 왜냐하면 여자는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생명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이를 천문(天門)이라 칭하고 있다. 아이가 맑고 깨끗하여 분별 이전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여자는 만물이 출몰하기 이전 만물의 생멸과 왕래를 다 허용한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 허공처럼 만물의 생멸과 왕래가 이루어지듯이 여자 또한 생명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용이 도의 작용이다. 도는 하지 않음의 함으로 사방의 일에 통하고, 낳고, 기르고, 생존케 하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는다. 이처럼 노자의 관심은 강함이 아니라 유약함, 부드러움, 무위의 생성과 양육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의 모습과 유사하다. 자연은 변화하고 반대편으로도 열려있다. 이는 가치나 신념을 가지고 구분과 규정을 수행하는 지(知)의 세계가 아니라 반대편과의 관계 속에서 본질에 구애되지 않는 무지(無知)의 태도여야 가능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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