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길라잡이 (26)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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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길라잡이 (26)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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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넷째> 수행자는 스스로 자신을 경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모태에 들어있는 자도 아니고 물에 빠진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니다. 또한 제4선에 든 것도 아니고,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멸진정에 든 것도 아니다. 그대에겐 반드시 들숨과 날숨이 있다. 그대의 통찰지가 둔하기 때문에 파악을 못할 뿐이다.’라고. 
첫 번째 ④단계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숨을 고요히 하겠다.’라고 결심하고 끊임없이 개념으로서 들숨 날숨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호흡의 개별적 특성, 일반적 특성 또는 니밋따의 색깔(집중의 표상)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들숨날숨은 개념입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을 비유로 들면, ‘흙 그릇’은 흙덩이의 결합으로 형성화된 모양을 근거로 마음이 취한 이미지나 영상인데, 사람들은 여기에 흙 그릇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치 흙 그릇이 존재한다고 인식합니다. 이를 두고 개념으로서 ‘흙 그릇’을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궁극적 실재는 사대四大의 한 요소인 지地, 즉 물질입니다. 
들숨날숨의 개별적 특성이라 함은 숨[風]의 4대 요소인 단단하고 거칠고, 움직이고, 따뜻하고, 지탱하고, 밀고나가는 성질 등을 뜻하고, 숨[風]의 일반적 특성이라 함은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의 세 가지 성질을 뜻합니다.  
첫 번째 ④단계에서 ‘호흡의 작용[身行]’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코끝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삼매를 개발하기 위해서 집중해야하는 곳은 밖의 현상이나 사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 코끝에서 들어가고 나가는 숨, 그 뿐입니다. 개념으로서의 들숨날숨에 사띠(sati)하는 것은 본 삼매[心解脫]를 증득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달리 ‘들이쉼과 내쉼’의 과정에서 그 숨결의 세 가지 특성을 내관하는 것은 위빠사나의 영역에 속합니다. 이 수행은 근접삼매 또는 본 삼매를 증득한 뒤에 순차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첫 번째 ④단계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은 ‘숨을 고요히 하겠다.’라고 결심하고 끊임없이 숨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는 단지 개념으로서 들숨 날숨에 대해 깨어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숨은 점점 고요해지고 마음의 눈에 의해 보이는 표상, 즉 니밋따(nimitta)가 떠오르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니밋타는 마음이 만들어낸 영상으로 호흡명상의 준비단계에서 대상으로 취해진 표상[코끝]과는 명확히 다릅니다. 집중이 점점 강해질 때 회색의 연기 같은 색깔이 콧구멍 주위에 나타나는데, 이 회색의 연기를 빠리깜마 니밋따(준비표상)라고 부릅니다. 이것 외에 욱가하 니밋따(익힌 표상)과 빠띠바가 니밋따(선명한 표상, 닮은 표상)의 두 가지 니밋따가 더 있습니다.
아나파나 사띠의 니밋따는 수행자의 지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목화 솜 또는 솜으로부터 뽑은 실 뭉치, 움직이는 바람 또는 새벽별 금성처럼 밝은 빛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긴 밧줄이나 끈, 화환, 한줄기 연기, 뻗쳐있는 거미줄, 엷은 안개, 연꽃, 마차의 바퀴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수행자 각자에게 나타난 니밋따의 모양이나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또는 들숨 날숨의 지각이 무엇이든 간에 니밋따에 주의를 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바라보기만 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모양이나 형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집중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이고, 진보는 멈추고 니밋따는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따라서 니밋따가 처음 떠올랐을 때 집중을 호흡에서 니밋따로 옮기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옮긴다면 니밋따는 찰나적으로 사라져 버림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니밋따를 보는 마음과 들숨날숨을 지켜보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니밋따가 안정되고 마음이 스스로 고정될 때에도 마음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니밋따가 호흡이 접촉하는 바로 그곳에 떠오르고, 안정되며 호흡 그 자체처럼 나타나고, 호흡도 니밋따처럼 나타나면 호흡을 잊고 단지 니밋따에 깨어있어도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호흡에서 니밋따로 옮김으로써 수행은 한 걸음 더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니밋따가 나타나기 바로 전에 대부분의 수행자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새내기 수행자에게는 약 20여 분 호흡관법을 하였을 때 대부분 숨이 미세해지면서 분명하지 않게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숨이 미세해질 때 숨을 더 분명하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런 노력은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고 집중(삼매)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숨에 주의를 기울였던 그곳에서 단지 있는 그대로 숨에 대해 깨어 날 수 있다면 숨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들숨날숨과 이를 알아차리는 마음, 이 둘만이 현전現前할 때까지 아나빠나[들숨날숨]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사마타 수행’의 올바른 길입니다.
니밋따에 마음을 계속 유지한다면, 니밋따가 목화솜처럼 하얗게 될 때를 일컬어 ‘욱가하 니밋따’라 부릅니다. 이 표상은 산뜻하지 않고 흐릿하게 나타납니다. 욱가하 니밋따에 마음을 1∼2시간 고정할 수 있다면 니밋따는 깨끗하고 밝게 빛나는데, 이를 ‘빠띠바가 니밋따’라 부릅니다.
이 두 가지의 니밋타가 수행자에게 나타나자마자 번뇌들이 억압되고 오염원들은 가라앉고 사띠(sati)가 확립되어 마음은 근접삼매에 든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나타난 니밋따의 색깔로 마음에 잡도리하거나 그 특징을 반조해서도 안 된다고 경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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