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⑩ - 공空하지만 허무하지 않았으며 적寂하지만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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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⑩ - 공空하지만 허무하지 않았으며 적寂하지만 외롭지 않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1.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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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 - 시인, 수필가
곽경립 - 시인, 수필가

왕유王維(701-761)는 일찍이 불교에 심취하여 그 시대의 다른 문인들에 비해 선의 이치(禪理)에 대한 이해가 깊었습니다. 대승불교는 원래 마음의 종교로 마음과 마음에 대하여 논의하고, 번뇌 속에서 깨달음을 열어가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입니다. 특히 남종은 모든 사물의 현상은 마음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본래의 성품(自性)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라도 만 가지 변화(境)에 물들지 아니하고 항상 자재한다.”고『육조단경六祖壇經』은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끊어 마음을 비움으로써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지(無念心空의 境界)를 추구하는 선종禪宗 사상은 왕유의 시 여러 곳에서 표현됩니다. 선종의 인생철학과 사유방식을 받아들여 불교의 이치와 선취를 시속으로 끌어들인 시인 왕유가 선에 기울인 관심은 진지함 그 자체였습니다. 불교를 통하여 그가 얻은 자유는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난 고독이었습니다. 그 고독은 자연과 함께 하는 고독이었기에 공 하지만 허무하지 않았으며 적寂하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이제 왕유의 시 한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향적사 가는 길                                

향적사 어디인지 알지도 못한 채
몇 리를 걸어 구름 속 봉우리로 든다 
고목이 우거져 오솔길도 없는데
깊은 산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 
골짜기 흐르는 물 바위틈에 흐느끼고  
숲속의 맑은 햇살 푸른 솔에 차갑다 
저물녘 고요한 연못 굽이진 곳   
선정에 잠긴 스님 생멸의 번뇌를 누른다

過香積寺 과향적사                      

不知香積寺 부지향적사
數里入雲峰 수리입운봉
古木無人徑 고목무인경
深山何處鍾 심산하처종
泉聲咽危石 천성인위석
日色冷靑松 일색냉청송
溥暮空潭曲 부모공담곡
安禪制毒龍 안선제독룡

구름이 산봉우리에 자욱한 고목 우거진 깊은 산속, 들려오는 종소리와 흐느끼는 샘물 소리가 산의 적막을 열고 있습니다. 푸른 솔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추는 햇살이 차갑게 느껴지며 마음이 저절로 적멸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저물녘 햇살이 비스듬히 숨어드는 산허리 굽이진 곳, 산사의 고요한 자연과 마주하여 세상을 잊고 삼매에 드신 스님의 모습에서는 맑은 기운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시인은 스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꾸는 세계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시詩속에 그려놓습니다. 왕유의 시속에 담겨진 선취는 시인의 생활철학인 동시에 일상에서 얻은 느낌을 자연에 결합시켜 시적언어로 표현된 선적 경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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