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입니다. 사람들은 봄이 왔다라고 하지요. 하지만 봄이 그냥 오지 않습니다. 봄이 드러나기 전에 겨울은 이미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은 필요한 물을 끌어오고, 따뜻한 바람을 모으고 그럽니다. 그 결과 봄이 옵니다.
모질고 억센 겨울 가운데서 봄은 부드러움으로 겨울을 헤치고 나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것이 드러나기 전에 몇 번에 걸쳐 전조증상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것을 잘 알아차리면 변화에 알맞은 모습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무엇이든 과정 없이 그냥 드러나는 것이 없거든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올해는 뻣뻣하게 굴지 말고 져 주십시오. 남편의 말이, 부인이 말이, 아들딸 말이 썩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고 져 주십시오.
그것이 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주도에 한라산이 있지요. 그 한라산은 동서남북에서 보는 것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동쪽에서 본 사람이 자기가 본 한라산이 맞는다고 우기면 어찌되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하게 공정公正공정公正하지만 참으로 공정하려면 자기, 즉 아상我相이 없어야 합니다. 한라산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말하려면 허공에 높이 올라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정은 이해利害의 차원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옳다고 공정하다고 우길 일은 아니지요.
부드러운 것은 작은 틈만 있어도 휘어져 들어가 단단한 것을 깨뜨리고 뚫을 수 있지만 뻣뻣한 것은 조그마한 굴곡이 있어도 막힙니다. 올해는 지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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