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 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한국불교태고종 정방사 주지 혜일 스님 - 3천일 관음정진으로 자비와 힐링 도량 일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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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 제주불교가 만난 사람 - 한국불교태고종 정방사 주지 혜일 스님 - 3천일 관음정진으로 자비와 힐링 도량 일궈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2.0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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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사면의 바다다. 봐도 봐도 눈이 호강하는 푸르고 좋은 바다의 파도가 문섬을 싸고 돈다. 한 폭의 풍경화다. 북쪽에는 한라산 자락에‘솔오름(쌀오름)’ 이 받쳐주면서 그 오름자락에서 시작되는 동홍천의 물길은 정모시를 지나서면서 응집되며 곧장 정방폭포로 떨어지면서 바다로 이어진다. 정방사는 정모시를 품고 있어서 여름이면 산책객들은 물론 사찰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시원한 청량제를 선물한다. 매화꽃이 계절을 뽐내고 시선을 강타하며,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한라산 자비도량 정방사라는 커다란 바위에 사찰명이 새겨져 있다. /편집자 주
정방사 주지 혜일 스님
정방사 주지 혜일 스님

이고득락離苦得樂 고진감래苦盡甘來 새기면서
코로나19 위기 지혜롭게 대처하길 

▶ 연꽃 미소를 닮듯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도학 혜일 스님!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혜일 스님, 경내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이 매우 빼어난 것 같습니다. 하천 물이 흐르고,  시비(詩碑)들도 함께하고 있는 가운데, 정방사가 창건된 지도 꽤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 예. 이곳 정방사는 지난 1931년 서귀포 영천동에 창건될 때만 해도 쌍계사(雙溪寺)였죠. 이어서 1934년 서홍동으로 이전했다가 1935년 현재의 동홍동에 들어섰는데, 연혁비에 따르면 남하(南夏) 스님이 창건하셨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콘크리트 대웅전의 작은 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스님께서는 일찍이 사문에 들어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 예. 제가 초등학교 때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고,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져, ‘절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 는 말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 손잡고 서귀포 구룡사로 들어서게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법정사를 다녔던 원만화(이의열)보살로 절 살림이 어려우면 직접 탁발해서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손수 준비했을 만큼 신심이 매우 돈독했습니다. 1918년에 ‘법정사항일운동’을 주도한 동화 스님을 지극정성으로 시봉한 보살로도 유명합니다. 
▶ 스님께서는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었지만, 사찰에서는 승복을 입고, 절 마당을 쓰는 일 하나도 게을리 하지 않은 동진출가승으로 ‘천수경’  은 물론  ‘초발심자경문’ 도 철저히 배워나갔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룸비니 불교학생회를 이끌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때부터 행자생활이 시작된 셈이군요.
▷ 예.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요. 서울의 덕암 스님이 보림사 법회에 오신다는 전언을 듣고 훗날 태고종 총무원장. 종정에 오른 덕암 스님을 친견하는 순간 환희가 차올랐었죠. 용기를 내고 “큰 스님을 시봉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더니,  스님께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법륜사로 오너라” 는 한 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 그래서 그 후 어떻게 하셨는지요?
▷ 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법륜사로 걸음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1970년이었으니까요. 그 때 덕암 스님은 아차산 영화사에 있었고, 법륜사를 창건한 대륜 스님(태고종 전 종정이 주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시간이 흘러 대승계를 받은 저에게 한 마디 말씀을 던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어떤 말씀이셨던가요?
▷ 예. “길을 떠나거라” 라는 한 마디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만행 길에 오르라는 것이었죠.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서쪽 대표 관음도량인 강화 보문사였습니다. 길에서 잠을 청할지언정 그 어느 곳에서도 두 번 머물지 않았죠. 걷고 걸어서 동쪽의 관음도량 낙산사에 닿았고, 이내 설악산 봉정암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산사에서 산사를 1년 간 돌아 서울로 돌아와 칠보사에 들어가 아침 공양을 하고는 석주 스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 그러시면 덕암 스님께는 어느 사찰에서 시봉하시게 되나요?
▷ 예. 영화사에서 덕암 스님을 시봉하면서 매년 한 번씩 홍련암으로 걸음해서 관음기도를 올렸는데, 1983년 봄이지요. 덕암 스님의 도반인 도쿄 관음사 주지 인봉 스님의 후원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인봉 스님의 후원에 힘입어 대정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이릅니다. 
▶ 이곳 정방사에는 언제 오시게 되었나요?
▷ 그러니까 1997년 5월에 제주도 건너와 정방사 주지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때 큰 발원을 세워 3천일 관음기도에 들어가 회향하고 지금까지 두 번의 중창불사가 있었는데. 대웅전은 2011년 낙성식을 갖고, 단청은 2013년에, 2층 건물의 세심각(洗心閣)은 202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정방사 24년의 중창불사를 하는 동안 어려움과 번잡한 일들도 많았지만, 이제 모두 깨끗이 정리가 된 셈입니다. “불보살님 가피입니다.”
▶ 정방사하면 어린이여름학교가 생각납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주신다면?
▷ 예. 그러니까. 1997년 7월부터 첫 선을 보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잠시 멈춰있기는 합니다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캠핑법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쉽게 불교문화도 익히고, 대웅전 앞에 텐트를 설치해 쉬고 묵어가며 설법도 듣고, 차 한 잔을 나누며, 재미있는 강의도 듣는 프로그램입니다.
▶ 스님께서는 천수천안 합창단과 봉사단도 조직했다고 들었습니다.
▷ 노래하고 연주하며, 듣는 사이 우리의 삼업은 청정해진다고 봅니다. 미세한 변화라도 그것은 선한 쪽, 상생의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법을 얹은 선율이 닿는 그곳이 정토가 아니겠습니까. 
▶ 또한 스님께서는 힐링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예. 정방사 주변은 청정지역입니다. 산사와 정방폭포, 소천지를 잇는 다양한 루트를 활용한다면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절경을 안고 걷다보면 매 찰나가 좋은 순간임을 짐작할 수가 있을 테죠. 부처님의 존귀함을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가 신심을 북돋듯이 나를 찾아가는 ‘세심(洗心)길 걷기가 환희를 샘솟게 할 것입니다. 

경내를 거닐고 있는 혜일 주지 스님
경내를 거닐고 있는 혜일 주지 스님

▶ 스님께서는‘중편조동오위’ 를 일본에서 가져오셨는데, 이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중편 조동오위’ 를 쉽게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 예.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쓴 이 책의 내용은 조동종 수행법인 묵조선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뛰어 넘은 절대의 심성인 ‘묵’을 통해 일체 진리가 본래 완성되었다는 원칙에 입각해 좌선하면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동종을 만들어, 편정 오위설로 ‘정중편(正中偏), 편중정(偏中正), 정중래(正中來), 편중지(偏中至), 겸중도(兼中到)’입니다.  
▶ 스님께서 현대불교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아, 예. 어렸을 때부터 불교에 대한 심신을 기르는 것과 나이 들어서 불심을 심어가는 것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봅니다. 어렸을 때는 저의 경우는 사찰을 아주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돈독한 불자인 어머님은 광명사 도화주 보살의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린이의 심성을 잘 길러주는데, 불심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치원, 초등,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대학에서는 대불련으로 이어지고 청년불자회로 연계되어 나갈 때 심신은 더욱 돈독해지고 나이 드신 분들도 염불포교가 쉽게 흡입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 임인년 새해에 덕담 한 말씀 주신다면?
▷ 어렵고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이지만, 슬기롭게 이겨내야 합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과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하다보면 즐거운 날이 반드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라도 기도 정진하시게 되면 위안이 될 것이고 그게 습이 되도록 힘써 노력하시면 될 것입니다.
▶ 남기고 싶은 말씀이라면?
▷ 예. 자유롭게 사는 삶 속에서 이 정방사에 대한 사적비를 세우는 일도 남아있고, 혼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삶의 상황에서 한 걸음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미완성으로 남기에 사람들의 겪는 일체의 문제와 고통, 아픔과 괴로움을 모두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착도 생각도, 추억도 모두 내려놓기만 하면 일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을 남기고 싶습니다. 

정방사와 함께 하는 정모시
정방사와 함께 하는 정모시

▶ 일주문을 들어오면서 큰 바위에 새겨진 의미있는 마애명을 잘 읽고 마음 한 자리에 두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성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라는 법구경 한 구절을 되새기며, 오늘 한라산 자비도량 정방사 주지 도학 혜일 스님과의 대담을 모두 마칠까 합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 예.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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