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법문 - 구래부동명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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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법문 - 구래부동명위불
  • 우득 스님 - 와우정사 주지 / 한라정토회 지도법사
  • 승인 2022.02.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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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이니 보름 이야기를 좀 해야겠지요? 정월 대보름은 24절기 가운데 두 번째 절기입니다. 대보름이면 오곡밥에 마른 나물을 먹고 부럼을 깨는 등의 풍습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 농경 사회가 낳은 풍습입니다.
겨우내 묵었던 곡식들로 오곡밥을 해서 영양을 보충하기도 하고 묵은 마른 나물들도 다 처리하고 그럽니다. 예전에 농부들은 겨우내 쉬었던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것이죠.
한편 절집에서는 안거가 해제되는 시기입니다. 날씨가 춥고 더운 때 스님들은 안거를 합니다. 안거 기간에 스님들은 움직임을 자제하고 한곳에 조용히 머물면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나? 어떻게 하라고 하셨나?’를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삼재三災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대보름은 삼재 등 액을 막는 불공을 하는 날로 인식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 등의 기후 변화 그리고 지진 등 땅의 움직임, 태풍 같은 공기의 움직임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이러스 같은 병균에도 취약했고요. 그래서 불을 놓아 땅을 살균하는 일도 다 이 시기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때의 농경사회가 아니고 농업조차도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은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꼭 오곡밥에 마른 나물을 고집할 필요도 없겠지요. 삼재 역시 재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복과 화는 둘이 아닙니다. 하늘도 땅도 다 제 자리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사람들이 화로 인식을 하는 것이지요.
불교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세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모습이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둘째 모든 것에 항상恒常하는 내가 없다. 셋째 모습이 있는 것은 변해 가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한 번도 변한 적 없고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부처입니다. 이렇게 인식을 한다면 고통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내용이 법성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제가 절 뒷산에 오르다 보면 음료수를 마시고 그냥 던져버린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을 봅니다. 어디 절 뒷산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이 다녀간 계곡마다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은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사람처럼 손이 없으니 크게 한번 폭우를 내려 다 쓸어냅니다. 그때야 비로소 사람들은 마을로 쓸려 내려온 쓰레기를 치웁니다. 이렇게 사람 입장에서는 재앙일지 모르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때야말로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나? 어떻게 하라고 하셨나?’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생전에 “마구니야, 어서 내게 오너라. 나는 너를 부처님하고 똑같이 반갑게 맞이하겠다.”하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처와 마구니를 똑같이 받아들이는데 거기에 무슨 마魔가 붙어서 성철 스님을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종이로 그린 부적은 찢어질 수도 있고 젖어서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긴 부적은 없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과 화가 한 모습임을 안다면 성철 스님처럼 당당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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