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⑪ - “자연의 그윽한 정취와 한 몸이 되어 무념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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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⑪ - “자연의 그윽한 정취와 한 몸이 되어 무념의 세계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2.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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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王維(701-761)는 오로지 불도에 심취하여 세상인연을 멀리하고, 고요한 자연에서 한가롭게 살면서 마음의 번뇌를 끊어내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시인에게 자연은 심신의 한적을 즐기면서 마음의 근심을 끊어내고, 세상의 갈등을 해소하는 정신적 안식처였던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사상은 세상만물의 모든 것이 내 마음의 변화물이며 내 마음이 없다면 온갖 세상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관유심주의主觀唯心主義 사상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실체가 아닌 내 마음의 변화라는 것이지요. 현상이 실체가 아니라는(一切法空)인식은 사물의 진실을 여실히 본 ‘깨달음의 인식’이며, 실체가 아닌데도 실체시하는 인식의 입장을 철저히 부정하는 불가佛家사상입니다. “모든 실체가 변화하지 않는 본질(自我)이라면, 생겨나고 사라짐(生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용수龍樹의 중관中觀사상은《반야경般若經》 에서 설해진 공성空性사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연으로 생겨날 뿐(緣起), 변화하지 않는 실체(自我)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타佛陀의 사상을 대승적 논리로 전개시킨 것입니다. 일체가 공空이라면 인간은 확실히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대승사상은 왕유로 하여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포기하게 하고 체념하게 하여 세상과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고 고민에서 벗어나게 하여 심신의 자유롭고 평온한 경지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시인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둠이 고요히 깊어가는 밤, 세상과 멀리 떨어진 대숲 깊은 곳, 시인은 홀로 거문고  를 연주하다 문득 빈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길게 불어봅니다.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숲속, 시인은 자연의 그윽한 정취와 한 몸이 되어 무념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세상의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달빛만이 나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시인은 단정 지음으로써 객관사물을 자신의 주관의식 속으로 끌어들여 객관적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은 선의 심오한 철학적 이치(哲理)를 단출하면서도 담백한 자연시속에 담아냄으로써, 그의 시속에 들어 있는 선禪의 정취는 독자로 하여금 언어 밖의 여운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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