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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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정(情)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3.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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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_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_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지금이야 어디 그러랴. 한 세대 전만 해도 집에 와서 TV를 켜면 쉰세대고 컴퓨터를 켜면 신세대란 말이 나름 공감대를 형성하며 설득력을 얻을 때였다. 쉰세대든 신세대든 너나없이 정보의 범람 속에서 필요한 뭔가를 찾으려 컴퓨터를 켜 놓으면 그 정보를 찾아 가는 길도 어렵지만 정보보다 찾아 가는 동안 그 길목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게 때론 번거로울 때도 많았다. 관두고 복잡한 생각에 TV를 켜 본다.
한 프로가 끝났는지 광고 시간이다. 어느 제과회사의 제품에 한자로 ‘情’이라 딱 한 글자를 흘림체로 써 놓곤 회사 이미지를 있는 대로 부각시키느라 바쁘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광고다. 과자를 보면 그 회사가 얼른  연상될 수 있게 오래도록 한 우물 파는 마음으로 광고를 하고 있어서일까. 타 회사에서도 유사한 제품을 출시했으나 유독 그 제품에 손이 가는 것은 회사의 카피도 카피지만 오래도록 기억된 자연스러움에서 얻어지는 부가효과일 게다. 돈 들이며 광고하는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산소 갈 준비 안 해? 어여 낫 갖고 와. 갈아줄게”하시며 매년 벌초 때가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당신 성품답게 느긋이, 그러면서도 당신이 먼저 서두르며 챙겨 주신다. 그렇게 재촉하여 작년 이맘때처럼 갖다 드리면 할아버진 날을 세우느라 엄지손가락으로 튕겨도 보고, 때론 제대로 날이 섰는지 낫을 빗겨 가며 묘한 각도로 눈대중을 맞추느라 이리저리로 살핀다.
할아버지가 숫돌에 낫 가는 걸 유심히 눈여겨보지만 어느 만큼이 제대로 갈린 것이고, 또 어느 정도 반짝여야 다 된 것인지 구분이 도통 안 간다. 다 된 듯하여 “이건 다 된 거다 예?”하고 여쭈면 ‘덜 되었다’시며 낫을 숫돌에 갖다 긁듯이 벼리시기도 하고, 또 숫돌을 아예 낫에다 박박 문지르기도 하며 두어 방울 뚝뚝 물을 적시곤 다시 반복하셨다.
“이건 큰아들 주고, 이건 작은아들 하라 하고, 이건 직접 써. 잘 들게야.”숫제 번호 까지 부여하며 하나하나 정리도 해 주신다. 내가 이곳 양로·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시작된 할아버지와의 인연이다. 그러던 오늘 인연의 끝을 할아버지의 입관제를 지켜보는 걸로 마무리했다. 유족과 함께 한 자리였다.
요 며칠 전 상태가 안 좋아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셨단 말은 들었지만 지척이 천리라더니 일이 바빠 하루하루 미루다 짬을 내어 뵈러 가 보았다. 저쪽 호스피스동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산소마스크에 의지하여 등 돌려 누운 모습은 평소의 체중 절반도 안 될 것같이 야위어 있었다. 야윈 그 모습 위로 울컥 가슴을 한 치는 허공에 올렸다가 내려놓아야 했다. 
암은 소모성 질환이라고 하지 않던가. 암의 고통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주무시고 있기에 깨우면 다시 깨어난 시간은 고통의 연속일 테니 내일 다시 와야지 싶어 그냥 돌아왔었는데…. 노인의 건강은 밤새 안녕이라 누가 말했을까? 아침에 출근하니 돌아가셨단다. 이런! 이런! 내 행동에 이렇게 후회스럽고 미련하단 생각을 스스로가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법이 생기고 나서 요양 등급이 일정 등급을 받고 원하면 입소가 되지만, 그때만 해도 양로원은 기초수급자이며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65세 이상이면 필요한 기본적인 지원은 국가가 다 책임진다는 보장 아래 입소가 되어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서 생활을 하게 되신 게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연락을 받고 외지에서 유족이라고 두 아들이 걸음 하였다. 부자의 관계에서 오는 정의 근본이 뭔지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멍하게 쳐다보는 곳으로 깊은 호흡만 간간이 감지 될 뿐 말도, 행동도 아끼는 모습이 부자간 관계의 벽이 육중한 무게로 쌓은 담처럼 무게감만 느꼈다. 하기야 하늘이 내려앉는 슬픔을 가눌 길 없어 가슴팍을 울리며 오열해도 모자랄 그 정을 눈물 한 방울 떨구어 내지 못하는 그들의 아픔인들 어찌 내가 짐작이나 하며 헤아릴까만.
돌아오는 길에 생각들은 열을 지었다. 한 생을 살면서 지키고 감당해야 하는 권리와 책임 그리고 의무에 대하여 말이다. 언젠가 한 지인이‘책임과 의무가 하나씩이라면 권리는 그 절반만 찾아야 된다.’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며 머릿속의 생각들은 복잡하게 너울을 탄다. 
생면부지의 오로지 직업적인 만남에서 시작된 정에도 이렇게 가슴을 울리며 착잡하게 감겨 오는데 싶다가 대책도, 끝도 없이 피어 날 생각들을 말아 쥐었다. 관계에서 오는 정의 크기를 재어 가며 굳이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알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세상에 단 한 분이고, 어느 세월의 한 토막에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불러 볼지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말이다.

뜨거운 햇살 사이로 뽀얀 황사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눈을 감았다 떠 보았다. 송홧가루인지 미세먼지일까. 헷갈리는 이물질로 감았던 눈을 뜨는데 생각 하나가 점점 다가온다. 보내고 그릴 정이라도 되는 듯이. 가슴깊이로 진심 담아 기도했다.
흐드러진 봄 꽃 밟고 떠나신 길, 당신이 누운 자리도 꽃 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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