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필 - 우리 동네 노자와 마음산책 -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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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필 - 우리 동네 노자와 마음산책 - 세 번째 이야기
  • 글·김희정 시인
  • 승인 2022.03.22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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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중심에 서 있을 때 옳고 그름 말할 수 있어”

오랜 만에 동백동산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우리 동네 노자와 함께요. 바깥 날씨는 차가운데 숲속은 포근하고 아늑하더군요. 숲을 걷게 되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나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보리수부터 사라나무까지요. 
보리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죠. 인간 싯타르타는 그 나무 아래서 붓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명 중생인 동시에 위없이 밝은 존재 붓다인 것을 알아내신 혁명적인 순간을 지켜본 나무가 보리수입니다. 
사라나무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우리 동네 노자가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곳에 사라나무가 쌍으로 서 있었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사라나무 잎이 하얗게 변했다고 합니다. 마치 그 모습이 학이 내려앉은 것 같다고 하여 학림鶴林이라고도 표현하죠.”

생사의 문을 열고 해탈 열반으로 들어가시는 부처님을 지켜본 사라나무입니다.
꽤 쌀쌀한 날씨인데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있더군요.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이 저희들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니 동백 동산인데 왜 동백나무는 없어?”
우리는 그만 웃어버렸습니다. 
이게 다 동백나무인데 그분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동백꽃만 알고 나무를 본 적이 없든가 아니면 나무에 관심이 없었던 거겠죠. 참으로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우리 동네 노자가 말했습니다.  
“중정中正이라는 게 있습니다. 중심에 서 있을 때라야만 이것이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를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이 중정입니다. 흔히 공정公正이라 말하는데 세속 사람들의 공정은 이익과 손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쪽에서 보면 공정인데 저쪽 편에서 보면 공정이 아니죠. 진실로 공정한 것은 중정입니다.”
산책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키 크고 늘씬하고 푸릇푸릇한 동백나무가 맥도 없이 쓰러져 누웠더군요. 뽑힌 뿌리를 보니 뿌리가 빈대떡을 부쳐놓은 것 마냥 넓기만 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동네 노자의 말을 한 번 더 들어볼까요? 
“뿌리 깊은 낢은 바람에 아니 뮐세…….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만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몇 백 년을 버티고 있는 나무들은 뿌리를 깊고 단단히 내린 뒤에야 위로 자랍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심지가 굳건하지 못하면 저렇게 쓰러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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