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필 - 우리 동네 노자와 마음산책 -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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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필 - 우리 동네 노자와 마음산책 - 네 번째 이야기
  • 글 · 김희정(시인)
  • 승인 2022.04.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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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설레는 일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늘 새로움을 만나고 있는 거죠
그림·아미성
그림·아미성

함덕 서우봉 해변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갛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시작으로 비취빛, 황금빛까지 담채 색으로 분단장을 하였습니다. 평화를 그림으로 그리라면 바로 지금 이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와, 제주도 바다 정말 아름답죠? 저 바다 색깔 보세요?”
이 동네 가까이 사는 우리들도 이렇게 감탄을 하게 만드는 제주의 봄 바다와 산입니다.
우리 동네 노자도 바다가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탄을 했습니다. 우리 동네 노자가 말했습니다. 
“색깔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지금 저 바다가 저렇게 황홀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색깔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지금 저 아름다운 바다 빛을 볼 수 없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어디 색깔뿐일까요. 무엇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설레는 일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늘 새로움을 만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서우봉 둘레길을 걷기로 하고 언덕을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에 보니 하얀 모래사장에 젊은 여인이 무릎을 끌어안고 홀로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뒷모습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서우봉 언덕에 유채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푸른 바다와 대비가 되어서일까요? 마을 들판에 핀 유채보다 색도 짙고 향기도 무척 진했습니다. 우리 동네 노자가 말했습니다.
“바닷바람이라는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려니 그럴 거예요. 그래야 벌, 나비를 불러 모아 번식을 할 수 있거든요.”
서우봉 언덕배기에 푸릇푸릇 맛난 풀 밥상이 차려졌으니 말들도 외식을 하러 나왔습니다. 말에게 말을 걸어보는 사람들 풍경이 정겹습니다.   
서우봉 둘레길을 돌고 내려왔는데도 여인은 그림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노자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아마 저렇게 하염없이 바다에 씻어버리고 있는 겁니다. 다 비워내고 나면 답이 나올 거예요. 누가 어떻게 해 주지 않아도….”
그럴 것도 같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낙비도 없고, 멈추지 않고 부는 바람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해변 난간대에 기대어 그녀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삶이라는 환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은 마치 미륵반가사유상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미소와 같았습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여인은 끝내 깊은 사유를 끝내고 일어설 것입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미소를 머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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