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7)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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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47)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1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4.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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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은 정사를 지을 땅을 사기 위해 황금을 깐다

각원사 대웅보전 북쪽 벽의 첫 번째 칸에 그려진 벽화는 총 15장면(석씨원류 75~89번째 장면)이다. 다른 벽과 마찬가지로 벽화의 진행 순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진행된다. 내용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방문한 고향인 카필라바스투와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에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 일어난 일이다. 

5단      89부선계법(敷宣戒法)    88초건계단(初建戒壇)    87불구니건(佛救尼犍) 
4단      86지검해불(持劍害佛)    85항복육사(降伏六師)    84불화무뇌(佛化無惱) 
3단      83신일독반(申日毒飯)    82월광간부(月光諫父)    81어인구도(漁人求度) 
2단      80옥야수훈(玉耶受訓)    79포금매지(布金買地)    78수달견불(須達見佛) 
1단      77라후출가(羅睺出家)    76도제난타(度弟難陀)    75인자석의(認子釋疑)    

맨 아래 1단에는 카필라바스투에서 일어난 일이 그려졌다. 첫 번째 장면인 ‘인자석의’는 야수다라가 낳은 아들 라후라가 세존의 자식인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푸는 장면이다. 카필라바스투에 있던 석씨 종족은 드러내어 말하지 못했지만 내심 싯다르타 태자가 집을 떠난 지 12년이나 되었는데 태자비가 어떻게 애를 가졌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사실을 안 세존께서는 당시 일곱 살인 라후라가 자신의 자식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신통력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의 모습을 세존의 상호와 같게 하고, 몸에서 빛도 나게 변화시켰다. 야수다라는 라후라에게 반지를 주면서 ‘이것이 너의 아버지가 내게 준 신표이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라.’라고 명했고, 라후라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단숨에 세존을 찾아 반지를 받들어 올렸다. 이에 왕과 신하 모두가 기뻐하며 의심하는 마음을 거두었다. 세존은 부왕과 신하들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는 다시 의심을 품지 마시오. 이 아이는 나의 아들이며, 나와의 인연으로 화생한 아이니, 야수다라를 허물하지 마시오.”(대장엄경)
‘도제난타’는 세존의 동생 난타를, ‘라후출가’는 라후라를 출가시키는 이야기이다. 라후라가 아홉 살이 되자 가비라위국에 계셨던 세존은 목건련을 보내 라후라를 출가시켜야 한다고 정반왕과 야수다라에게 아뢰게 하였다. 야수다라는 남편인 싯다르타 태자가 결혼한 지 9년도 되지 않아 깨달음을 얻겠다고 집을 떠났는데, 이젠 다시 아들마저 출가시키려고 한다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출가를 반대한다. 이에 세존은 정거천자를 보내 전생에 야수다라가 내세에 자신의 처가 되게 해달라고 청하며 했던 서원을 상기시킨다. 야수다라는 문득 세존의 처가 되면 낭군을 따라 보시하여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을 거라고 전생에 자신이 한 서원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며 자식을 애착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라후라를 목건련에게 부촉한다(미증유인연경). 
2단에 그려진 세 편의 이야기는   『현우경(賢愚經)』과  『옥야경(玉耶經)』에 전하는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오늘날 라지기르)과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오늘날 슈라바스티)에서 일어난 일이다. 먼저 ‘수달견불’에 등장하는 수달(수닷타)은 사위성의 대신이자 큰 부자로 평소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 노인들을 구제해주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고아와 노인을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급고독장자(給孤獨長子)라 불렀다. 그가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 왕사성에 갔을 때 아는 이가 날이 저물었는데도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등 일하는 것을 보고 ‘누구를 접대하기 위해 그렇게 정성스럽게 몸소 준비하느냐’고 물었다. 지인이 세존과 그의 제자들을 접대하려 한다고 대답하자 다시 세존이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수달장자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즐거워지며 신심이 생겨 새벽이 되면 세존을 찾아가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새벽이 되어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자, 세존은 수달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밖에 나가 경행하였다. 수달이 몸에서 빛이 나는 세존의 모습을 보자 즐거운 마음이 갑절 더해지며 지극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 얼굴을 땅에 대며 세존께 절을 하며 자신의집에 머물기를 청한다.  
‘포금매지’는 세존께서 20여 회의 우안거를 보내며 불법을 설해 불교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인 기원정사가 세워지게 된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왕사성에서 세존에게 감화를 받은 수달은 세존께 사위성 중생들이 바른 길로 나아가게 사위성으로 오시어 가르침을 펴주시길 간절히 청한다. 세존께서 그곳에는 머무를 정사가 없다고 하자 수달은 자신이 정사를 세울 것이니 허락해 달라고 한다. 이에 세존께서는 사리불을 보내 수달장자와 함께 정사를 세울 만한 곳을 물색하게 하고, 결국 사위성의 기타((祇陀, 제타)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동산이 정사를 짓기에 가장 알맞은 땅임을 알게 된다. 수달은 태자에게 동산을 팔라고 하자, 딱히 땅을 팔 이유가 없는 태자는 황금을 땅에 깔아 빈 곳이 없을 만큼 땅값을 쳐주면 땅을 팔겠다고 한다. 그러자 수달은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땅을 황금으로 덮기 시작했다. 수달 장자의 행동에 감동한 태자는 분명 부처님이 큰 공덕을 지닌 분일 것이라 생각하고, 황금으로 채우지 못한 원림은 자신이 부처님께 바치겠다며 함께 정사를 세우자고 청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역 경전에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 불리는 기원정사이다. 그림(사진 1)에는 코끼리에 번쩍이는 황금을 싣고 와서 땅에 황금을 메우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오른쪽 하단의 녹색 옷을 입은 이가 수달장자, 붉은색 옷을 입은 이가 제타 태자이다. 배경에는 정사와 원림이 묘사되었다. 석씨원류 판화(사진 2)와 같은 도상이다.  

인도는 우기에는 다니기도 불편하고 질병도 유행하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3개월간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우안거를 했다. 이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공부하며 에너지를 축적하였다. 세존의 전법 기간 초기에 만들어진 이 기원정사의 보시 이야기는 일찍부터 불교 미술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진 바르후트, 산치, 아마라바티, 보드가야의 석비나 석주에 이와 관련된 장면이 표현되었다. 사실 보시를 강조하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팔상도의 일곱 번째 장면인 녹원전법상(사진 3)에 18세기 이후 이 장면이 새로 삽입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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