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고사리 꺾던 날
상태바
도댓불 - 고사리 꺾던 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03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주잡은 아버지의 거친 손에서는
거북등처럼 둔탁함이 전해오고
마디마디에서 뼈들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입술이 쓰다
이애현 - 수필가.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애현 - 수필가. 수필과비평 2011 수필등단한국문인 2019 시 등단제주문협, 동인 『脈』 , 제주수필문학, 혜향문학회원작품집 : 수필집〈따뜻한 소실점 〉 시집〈묵은 잠, 뒤적이며〉

이 비가 그치면 고사리 꺾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고사리 밭을 엊그제 다녀온 친구 얘기가 올핸 비가 없어선지 많이 없더라는 말로 다시 가야함을 알린다. 다음에 가자고 한 날이다. 새벽 4시 반까지 집으로 온단다. 엊저녁 서둘러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일찍 가느냐고 되묻다가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럼 너 빼고 간다는 은연중 협박성 발언에 꼬리를 얼른 내렸다. 
따끈하게 차라도 마시려고 준비한 후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 담았다. 꽉 찬 차안의 열기로 차창이 뿌옇다. 환기 시키려고 차창을 조금 열었는데 열린 창으로 싸하니 새벽 찬 기운이 밀린다. 밖의 풍경이 없어서일까. 드문드문 이동하는 차량의 불빛만이 눈에 익을 뿐, 이른 새벽을 가르는 거리는 한산했다. 얼굴들을 못 본 사이로 주변에 생긴 일들을 순번을 정한 것도 아니건만 여인들 넷의 이야기는 꼬리가 없다. 
아주 잠시 조용해지자 켜 놓은 줄도 몰랐던 라디오에선 몸에 좋다는 건강식이며 장수소식을 전하는 내용이 흘러 나왔다. 듣던 일행 중, 한 친구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를 한탄하듯 뱉어낸다. 우스갯소리인 줄 알고 다른 한 친구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천년만년은?’ 하고 대꾸한다. 
친정아버지께서 연세도 있지만 어머니 돌아가신 후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편마비에다 그 이듬해 치매까지 겹쳤다고 했었다. 결국은 노인시설에 모셨는데 지난주 초에 갔더니 친구 앞에서 엉거주춤 옷을 벗더란다. 혹시 소변을 실수해서 갈아입고파 그러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그 곳 직원의 말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벗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치매의 한 양상이라고 했던지. ‘이젠 나도 몰라보더라.’ 며 울먹거린다. 
오랜 시간 노인시설에서 생활 하다 보니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하지만 매월 내는 돈도 만만찮아 시누이 입장에서 올케언니들 눈치 보인다는 말과 함께 얼굴이 어둡다. 이어 ‘동네 큰 길 생기면서 좋아진 그 밭 줄 땐 좋아하더니…’ 혼잣말을 하다가 말문을 닫았다. 하긴 이게 몇 년째이고 앞으로 언제까지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속상하

고 가슴은 먹먹한가 보다.
얼추 한 시간 가까이 차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엔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주차하고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언제 새벽을 열었는지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해 있었다. 우리처럼 고사리를 꺾으러 온 차량들이다.
원체 넓은 오름을 끼고 있어선지 처음엔 사람하나에 고사리 하나처럼 보이더니 목적한 곳들을 찾아 흩어진다. 커다란 보자기라도 덮어 놓은 것처럼 시야는 사람 모습은 안보이고 그 자리를 안개가 차지했다. 뿌옇다. 고만고만한 자리에서 꺾는대도 안개로 일행들 위치를 잘 모르겠다. 꺾는 시간보다 일행들 잃어버릴까봐 이름 부르고 대답하느라 바빴다. 
두어 시간 지나자 간단히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 먹고 엇비슷하게 꺾은 고사리를 챙겨 담았다. 왁자하게 시끄러웠을 것을 차안에서 우스개 아닌 우스개처럼 내뱉은 친구의 걱정스러운 말 때문일까. 자욱한 안개 속 날씨처럼 분위기가 축축하게 젖어 가라앉았다. 
찔레꽃이 하얗게 필 때면 고사리도 제철이라는 말이 있던데 엇 나며 돋은 찔레가시만 모자며 윗옷, 바지를 긁으며 잡아당길 뿐 꽃은 아직 이른 것이 고사리도 제철은 아닌가 보다. 사방이 안개로 가득하여 가시거리가 10여 미터나 될까. 
돌아서 보면 거기가 거기인 것 같고, 희뿌연 안개는 사위를 짐작하는 것도 어려워 방향감각마저 마비시켰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무거운 걸까. 친구의 말에 엇비슷한 연세의 부모님을 둔 친구들은 아무도 내색은 않으나, 내 얘기인 양 착잡하게 감정은 깊이로 잦아든다. 차 한 잔씩 마신 후 안개비를 맞아서일까. 춥다며 그만 가자는 말에 감정의 무게 때문인지 모두 그러자는 분위기였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아버지가 계시는 곳을 방문하기로 하고, 혹시 몰라 챙겨 온 여벌옷으로 대충 갈아입었다. 가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러 아버지 간식거리를 사고 찾아갔다. 인사하며 손을 맞잡았다. 딸도 몰라보는데 몇 번 인사 나눈 친구를 기억 할 리가 없었다. 바다를 앞마당처럼 드나들며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어른이다. 마주잡은 아버지의 거친 손에서는 거북등처럼 둔탁함이 전해오고, 마디마디에서 뼈들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입술이 쓰다. 
‘이게 뭐냐?’며 침상에서 한쪽 다리를 침대 난간에 올렸다 내렸다하며 재미삼아 하는 아버지의 행동에 고무줄 바지가 허리춤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본 친구가 속상해 한다. 바지를 추켜올리며 ‘어머니 보고 싶지 않으냐’고 친구는 딱히 아버지를 향함인지 혼잣말인지 모호한 말을 뱉어낸다. 그 목소리는 갈라지고 끝은 흐리다. 이어 애써 숨기려던 감정은 아버지의 입가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 내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주르르 흐른다. 그 엷은 물기는 숨기고 싶었던 감정과 관계없이 아주 정직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쉬 떼지 못하는 발걸음이 반복하며 돌아서는 곳, 마음자리로 별 의미 없이 뱉어냈던 ‘천년만년 살고지고….’ 그 마지막 말줄임표를 아무도 더는 잇지 못한 채, 안개 속 고사리 찾아 헤맬 때처럼 하마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혼돈 속으로 감정은 고요로 빠져 들고 있었다. 
어쩌면 또 다른 나의 앞날일지도 모르는 무진(霧震), 그 속으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