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두 갈래 길
상태바
명상에세이 - 두 갈래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5.03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
유현

“길 가운데 ‘여덟 가지 바른 길’이 최상이고, 
진리 가운데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최상이고, 
담마(dhammā, 法) 가운데 열반이 최상이다. 
두 발 가진 자 가운데 지혜의 눈을 가진 분이 최상이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봄[dassana, 見]의 청정을 위하여 다른 것은 없다. 
그대들은 이 길을 따르라.”


「법구경」 273, 274 게송에 나온 금언이다. 
내 마음이 산만하거나 침체되어 있을 때 초기경전을 송경誦經하거나 염경念經한다.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부처님과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불기 2566년 초파일이 눈앞이다. 부처님의 재세 시에 친견하였더라면 법구경의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 여쭈어 볼 수 있었겠지만 현재라도 경전을 통해서 전승된 가르침을 만났다는 게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태양을 비추게 하여 생명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또 땅이 만물을 길러내듯 붓다께서는 무지하고 몽매한 나를 지혜와 자비의 빛으로 인도하신다.   
하지만 내 마음에 낀 먼지는 오랜 세월의 더께만큼 거칠고 단단해서 깨끗하게 씻어지지 않는다. 저열한 것을 따르고 방일하게 살고 그릇된 견해를 품고 살아온 삶의 흔적이나 발자국은 쉽게 지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희를 지난 망팔望八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앞날에 대한 기대나 불안은 아주 미세하게 일어난다. 그 반면에 지나온 옛길을 아쉬운 마음으로 저 멀리 오래도록 바라보곤 한다. 
앎과 봄이 청정해지는 비결은 지나간 일들을 한탄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거나 불행을 미리 예견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 가지 영역에 한정하여 바르게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는 수행에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맘 설레며 여러 갈래의 길 중 어느 길을 택할까 저울질하던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고 또 세존의 어떤 시자侍者처럼 다른 길로 들어서지도 않을 것이다.
한 때 세존께서는 ‘꼬살라 국’에서 나가사말라 존자를 시자로 삼아서 먼 길을 가고 계셨다. 이 존자가 도중에 두 갈래 길을 보고 나서 그 자신이 전에 살펴본 적이 있는 길을 지름길이라고 여겨 “세존이시여, 이리로 가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 “나가사말라여, 이 길이다. 이리로 가자.”  「두 갈래 길 경」(Ud8:7)에 나온 말씀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법문의 무엇이 내 맘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것은 붓다가 두 갈래 길 가운데 시자의 길은 도둑떼들의 매복했던 길이고, 세존께서 가리킨 길은 안온한 길이라고 지혜의 눈으로 보신 대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 이제 인생의 긴 여정은 하산 중이다. 하지만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무명無明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붓다께서 강조하신 유일한 길은 우리 범부중생들이 가지 못한 길, 가보지 않은 길, 지혜의 눈을 갖춘 이들만이 갈 수 있는 길, 붓다의 가문으로 들어가는 길, 그래서 시공간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