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금강경 - 네 번째 이야기-허공과 같은 마음 - “공의 체는 참으로 비어 있는 세계(眞空)를 말합니다”
상태바
똑똑 금강경 - 네 번째 이야기-허공과 같은 마음 - “공의 체는 참으로 비어 있는 세계(眞空)를 말합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6.28 2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은 空 ,性, 相이라 하여
생명실상의 근본(心體) 그것의 성품(心性)
그것들의 모습(心相)을 포괄해 말합니다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부처님께서 수붓띠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보살 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있는 바 일체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인, 알에서 태어난 생명, 태를 빌려서 태어난 생명, 습한 기운을 빌려 태어난 생명, 스스로 변화해서 태어난 생명들과 형상이 있는 생명이거나, 형상 없는 생명이거나, 분별이 있는, 혹은 분별이 없는 생명, 또는 분별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생명 등, 모든 생명들을 남김 없는 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을 모두 제도했을지라도, 사실은 제도되는 중생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수붓띠여,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독립된 실체로서 내가 있다는 생각(我相), 개인적으로 윤회의 주체라는 생각(人相), 어떤 실체에 의해서 살고 있다는 생각(衆生相), 개체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생각(壽者相)등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교철학의 생명관과 우주관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엄경 사구게(四句偈)입니다.

若人欲了知 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 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 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만약 우주의 처음과 끝을 알고 싶다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그랬듯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매우 포괄적 개념입니다. 흔히 세간에서 쓰이는 개념은 ‘마음이 아프다. 또는 마음을 잘 써야 한다. 혹은 마음을 닦는다.’와 같이 주로 사람의 생각 또는 감정들을 나타낼 때 쓰입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은 空 ,性, 相이라 하여 생명실상의 근본(心體), 그것의 성품(心性), 그것들의 모습(心相)을 포괄하여 말합니다. 여기서 말한 空은 어떤 개념일까요? 거기에 대하여 나가르주나(용수)의 《보리심론》에서 발췌하고 요약하셨다고 밝히신 금타선사의 <보리방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心은 虛空과 等할새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의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法身 인달하야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이것을 현대적 언어로 옮기면 “마음은(心體) 허공과 같아서 한 조각 그림자의 흔적이나 흐림이 없다.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 세계를 淸淨法身이라 하니 이 세계를 비로자나불로 생각해라.” 이것이 공(空)의 체(體)입니다. 공은 체(體)로서의 공과 용(用)의로서의 공을 나누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론 ‘체즉용(體卽用)이요 용즉체(用卽體)’라 하여 둘의 구분이 없지만 필요에 의해서 구분하기도 합니다. 공의 개념 중 ‘연기공성’의 공은 공의 용을 말하고 ‘중도실상’의 공은 공의 체를 말합니다. 이처럼 공의 체는 참으로 비어 있는 세계(眞空)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성의 개념을 볼까요.  

 “此 虛空的 心界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圓滿報身인달하여 盧舍那佛을 念하고”

자, 현대어로 옮겨 보겠습니다. “이와 같은 광대무변한(끝도 갓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 세계에 해와 달보다 밝은 금색광명을 띤 無垢(직역하자면 ‘티끌 또는 때 없는’이란 뜻이 되겠으나, 개인적 체험에 의하면 ‘틈이 없는’이란 뜻도 포함)의 청정한 물의 성품이 가득 찬 바다의 모습과 같은 불성의 바다를 원만보신이라 하니 이 세계를 노사나불이라 생각해라.” 

사실로써 말하자면 우리가 깊은 삼매 가운데서 체험할 수 있는 세계는 성품의 세계입니다. 이것을 현대적 물리학 용어로 양자의 상태라고 합니다. 허공과 같다고 하는 심체는 자각과 인식이 미치지 아니한 세계입니다. 허공이 제 스스로 허공이라 지각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허공과 같은 세계에(심체) 양자 상태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할 때의 공은 사실 이 상태를 말하고, 정신과 물질의 구분이 없는 곳도 양자로서의 상태일 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불교철학에서는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물리학에서도 물질과 정신을 다만 파동의 양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우득 스님 (와우정사 주지·한라정토회 지도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