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수필 - 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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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수필 - 장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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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교 수필가/(사)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 대표
박은교 수필가/(사)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 대표

맴 맴 맴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우리어므니가 장에 갔다 돌아 오시나보다. 동네 한복판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방치기 놀이를 하다가 헐레벌떡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내달렸다. 우리어므니 장에 가셨다가 맛있는 거 많이 사들고 돌아오고 계실까?
뜨거운 햇빛 아래 등어리에 한짐을 짊어메고 양손에는 봉다리 봉다리를 들고 땀을 흘리시며 걸어오고계시는 우리 어므니.
오늘은 장날이라 뜨겁기 전에 장에 다녀 오신다고 길을 나서셨던 어므니. 어므니가 장보고 돌아오시는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어므니~”
쪼르르 달려가서 어므니를 맞이하였다. 무엇을 담은 봉다리인지 모르지만 “내가 들고 가께” 냅다 받아들고 앞장서 씩씩하게 앞장서 집을 향했다. 사실은 이봉지 안에 들어있는게 무지무지 궁금했었기도 했다.
“어므니 이거 뭐산?”
“응~이것 저것 샀쩌”
집에 도착하는 길이 왜 이리 멀지? 우리어므니가 오일장 가실 적마다 사고 오시는 게 있다. ‘멩레기’라는 생선이다. 싱싱한 멩레기를 사다가 껍질을 벗겨내시고 시원한 물회를 만드신다. 된장에 식초에 청량고추 팍팍 썰어 놓으시고 시원한 물을 붓고 휘휘 저으시면 어므니표 물회 완성~. 땀을 흘리시며 완성된 멩레기 물회에 앞마당에서 잘자란 물외를 동강동강 잘라놓고 밭에서 잘 키워낸 청량고추에 어므니가 담근 된장을 발라 두루두루 밥상에 둘러앉아 침을 꼴깍거리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먹는 한끼의 식사.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었던 어느 여름날 어므니가 장본 후 함께하는 점심 한끼.
어므니가 이고지고 짊어지고 사들고 오신 보따리를 풀어보니 물메기 말고 또 다른 장본거리가 잔뜩 나온다. 참외도 있고 수박 한덩어리도 있고 도너츠도 있고...있고..있고.. 또 있다.. 우리 어므니의 사랑.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나의 어린시절. 우리 어므니의 젊으셨던 그 시절 하나 하나가 아깝고 소중했던 시절. 나에게 추억하며 행복해할 수 있던 그 시절이 있어 너무 좋다. 지독히 가난했지만 그게 불편한 지 아닌지 그저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 시절. 난 가끔 그 시절 그 추억에 빠져 헤멜 때가 있다.
요즘 내가 사는 세상은 물질만능에 모든 게 넘쳐 나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아끼면 부자되고 아껴야 사는 세상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먼저 써야 하고 남들이 갖고 있는 것들은 나도 전부 가져야 하고 남들처럼 놀러 다녀야 하고 남들처럼 먹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요즘이다. 아껴야 산다는 어므니의 가르침을 머릿속 깊이 박혀있는 나는 요즘 우리세대가 아닌 Z세대라고 하던가, 세대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라보다보면 참 많이도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내가 장보러 장에를 간다해도 아무도 길목어귀에서 기다리는 사람 없다. 내가 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온다해도 그 봉지에 들어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 봉지안에 들어있는 것들보다. 전화로 시켜 먹는 치킨이 더 좋으니까. 햄버거에 콜라가 더 좋으니까. 피자 한 판에 시원한 콜라가 더 좋으니까.
그렇게 길었던 시간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세상은 빨리도 변한다. 자꾸 급하게 변해버리는 모든 것들이 좋지만은 않다. 급하게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먼저 앞선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평화를 찾아야 하겠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을 추억하게 될 새날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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