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6) -도덕경 - “道만이 오직 자기를 잘 빌려주면서 또한 남은 잘 이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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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16) -도덕경 - “道만이 오직 자기를 잘 빌려주면서 또한 남은 잘 이루게 한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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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는 쉽게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숨어있는 듯하지만
이름도 없이 온갖 것을
아낌없이 가꾸고 완성시켜 준다

이 장은 백서본과 죽간본에 거의 완성된 형태로 다 들어있다. 이 말은 41장의 사유는 거의 원형에 가깝다는 말이다. 
도는 시간에 따라 변하며 상대적인 두 개의 대립면들을 모두 포괄한다. 이 상대적인 것들이 서로 혼융하여 관계와 변화 속에서 반대의 일치를 성립한다. 그래서 언어적으로 재단하기가 힘들다. 언어는 문법 속에서 체계화되고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 입장에서 한 가지 사물이 정반대되는 두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궁극적 진리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은 반대되는 두 대립면의 꼬임으로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삶에서 운용하거나 성실하게 실천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을 절대화하여 언어에 갇혀 있는 중간 단계의 지식인들은 긴가민가한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에 함몰되어 자신의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하급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두 가지 특성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상식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 속에서 이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이 아니라는 말이고, 역설적인 것이 아닌 것은 대립물들을 다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으며, 평평한 도는 치우친 것 같고, 크게 흰 것은 욕된 것 같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것 같고, 확고한 덕은 구차한 것 같다. 왜냐하면 도는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제 깜냥만큼 산다. 그러나 큰 방위는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며, 큰 흔적은 형체가 없듯이 대도는 쉽게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숨어있는 듯하지만 이름도 없이 온갖 것을 아낌없이 가꾸고, 완성시켜 준다. 그래서 도는 구체적이고 상식적인 것으로는 증명 불가능하고, 역설적이고, 위대하다. 
만일 도가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일정함만을 고수하여 하나의 규격화된 틀을 이룬다면, 이것은 곧 일정한 틀 속에 얽매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붕어빵처럼 똑 같은 것만을 찍어낼 뿐이지 무수한 만상(萬象)이 생겨날 수 없다. 만물은 천차만별이어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도는 자신의 일정한 모습만을 고집하려 하지 않고 무한한 변화에 응하기 때문에 잘 빌려주어 응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대립면들 사이를 특정한 의미나 내용을 중심으로 갈라놓았다. 그러나 노자는 대립면들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거나 심지어 그 흐릿한 경계마저도 없애 버린다. 이것은 본질적 내용으로 정명(正名)을 주장하는 유가와 달리 모든 존재물이나 가치들에 본질이 있음을 부정하고, 노자는 모든 것을 반대편 것과의 관계나 반대편을 향한 운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감산 스님께서는 이러한 도의 작용에 대해 도가 이름없는 가운데 숨어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없다고 주석한다. 이처럼 도를 체득한 사람은 만물이 가서 의지해도 부족함이 없고, 만물을 두루 주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반대되는 두 대립 면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하거나 마침에 있어 전혀 흠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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