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신간 소개 - 한희정 시조시인 “목련꽃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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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신간 소개 - 한희정 시조시인 “목련꽃 편지”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2.08.24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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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산책로에 지팡이 짚은 할머니 / 풀리는 태엽처럼 외길 하나 끌고서 / 백목련 목덜미 흘깃, 허리 한번 펴보네 / 자카드 꽃무늬 치마 걸음걸음 꽃이 피네 / 한 그루 나무로 살아 마지막 꽃 피우듯이 / 저 홀로 피안(彼岸)의 걸음, 은빛보살 부시다
- 한희정 시인의 시집  “목련꽃편지” 중 시  ‘뒷모습’  전문

제주 출신 한희정 시조 시인이 최근 시집 “목련꽃 편지”를 펴냈다. 한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그가 터 잡고 있는 삶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농부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 자식들과 관계에서 새롭게 터져 나오는 생의 의미를 비추는가 하면 딸로서 앞선 세대에 대한 슬픔과 연민과 사랑이 스며 있는 시인의 마음이 내비친다. 
그 가운데 앞의 시 ‘뒷모습’에서 시인은 산책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그루 나무’로 바라보면서 ‘피안의 걸음’을 옮기는 ‘은빛보살’로 표현하고 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이 햇살처럼 따사롭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는 시인의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배운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시 “슬픔해후”에서 보이듯 할머니는 무자년 소개령 이후 ‘한평생 혼술혼밥’으로 지내시다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세상을 따사롭게 보는 눈은 할머니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신 삶에서 나온 것이리라. 

차라리 두 손으로 훑었으면 좋으련만 / 찔릴까 또 베일까 공손히 떠받들며 / 귤 한 개 / 톡 떨군 손에 / 파랑새가 앉는다 // 때론 무심하게 때론 엄숙하게 /“땀시민 다 따주게”소박한 진리 앞에 / 어느새 / 비워서 충만한 / 초록 경전 펼친다 
-시  ‘손은 위대하다’  의 일부

가격이 폭락한 귤을 혼자 따면서도 ‘공손히 떠받들며’ 따는 마음에 ‘파랑새가 앉는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의 과정이 힘들고 버거운 것이 아니라 ‘초록 경전’을  펼치는 것처럼 경건한 일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귤 수확을 하는 농부의 안타까운 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귤 한 개 한 개가 다 소중하고 귀한 결실이기에 가격이 떨어졌다고 내다 버릴 수는 없는 것, 그래서 ‘때론 무심하게 때론 엄숙하게’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비워내고 충만한 그것으로 귤 수확을 해내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따스한 시선이 있기에 시인의 마음에는 또한 다음 세대를 향한 사랑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아이들이 찾아 헤매는 이역만리의 꿈이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있다는 걸 알려준다. 

비탈선 나무들은 제 스스로 중심 잡는데 / 휘면 휜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 돌 움켜 생사를 넘듯 뿌리르 내린단다 //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 시  ‘  아이야, 나무처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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