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 『표해록』 해부 - “한양에 가서 구경도 하고 회시에 응시도 하면 어떻겠는가?”
상태바
장한철 『표해록』 해부 - “한양에 가서 구경도 하고 회시에 응시도 하면 어떻겠는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24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한철의『표해록』에는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장한철 표해록 프롤로그

1770년 10월 장한철이 향시(조선 시대에 각 도에서 유생들이 보는 시험)에 수석 합격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양(서울)에 가서 회시를 치르도록 권했다. 또 관에서는 여비를 지원해 주었다.
장한철은 그 전에 향시에 여러 번 합격했지만, 한양은 1,000리(길이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 1리는 약 0.393㎞) 길이라 아주 멀고, 집안 형편도 어려웠으므로 과거를 보러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예전에 아주 먼 거리는 1만 리, 먼 거리는 1,000리, 조금 먼 거리는 100리, 가까운 거리는 10리를 가리키므로 1,000리는 아주 먼 거리로 한양에 갈 기회가 없다가 향시에 수석 합격도 했고, 여비도 마련되었으니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장한철은 항상 김서일과 같이 향시에 시험을 본 인연이 있어서 “우리 멀리 떨어진 한양에 가서 구경도 하고 회시에 응시도 하면 어떻겠는가? 여러 사람이 도와주어서 여행 경비가 부족하지 않을 터니 그대는 몇 개월 동안 단지 몸만 따라오면 되는 일이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와 함께 떠나도록 하게나.” 장한철의 권유에 김서일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잖고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한양으로 가는 길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라고 응답하니 그때가 경인년(1770) 섣달이었다.
장한철은 1771년 3월 3일 한양에서 보는 회답(조선 시대 두 번째 단계로 보는 시험)에 낙방한 후 마음을 추슬러 영조 51년(1775) 1월 30일 탐라에서 치른 승보 초시(조선 시대 첫 단계로 보는 시험)에 응시하였다. 이때 장한철이 쓴 글을 당시 채점관인 홍문관 제학 ‘이담’이 장한철의 글이 우수함을 영조 임금에게 보고하였고, 영조 임금은 회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시(조선 시대 임금님 앞에서 보던 과거)에 응시할 기회를 주었다. 그해 5월 25일 한양에서 치른 과거시험에서 장한철은 병과 27위로 급제하여 정조 10년(1786) 제주도 대정 현감을 거쳐 정조 11년(1787) 강원도 취곡 현령을 지냈다고 영조실록 124권에 기록되어 있다.

장한철의『표해록』은 폭풍을 만나 조난되었을 때 원본은 바닷물에 젖어 쓸모없게 되었으나, 다행히도 흔적을 더듬어 상세하게 사실적인 문체로 필사하였다. 장한철의『표해록』에는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한한 경험과 고난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해류, 풍습, 설화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해양문학의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을 근거로 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번역본들이 출간되면서 해양문학의 백미로 자리매김하였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여서 오랫동안 해상교류 활동을 통해 해상왕국을 꿈꿔 왔으나 이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장한철의『표해록』은 과거 제주도의 해양문화를 맛볼 수 있도록 단순히 표류로 끝날 뻔한 개인사를 여러 연구가의 노력으로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18세기 해양 문명을 추적할 기회를 얻게 해 주는 지침서로 국립제주박물관(장한철 필사본)과 국립중앙도서관(심성재 필사본)에 소장된 필사본 2권이 전해온다. 

필자는 장한철의 탐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백일장 대회를 개최하던 중 『노인과 바다』『15 소년 표류기』『로빈슨 크루소』를 탐독하며 설화 동화와 생활동화 창작에 전념하다가 옛 문헌인『표해록』 필사본을 접하게 되었으며, 이를 탐독하는 과정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도전과 진취적인 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대함과 필력에 매료되었다.
이에 앞으로 계속하여 표해록에 나타난 일기를 순서대로 분석하는 작업을 병행해 나갈 것이다.
덧붙여 장한철 표해록(1770년에 제주 출신 선비였던 장한철이 과거를 보러 배를 탔다가 폭풍으로 표류해 1771년에 귀국하기까지의 경험을 쓴 기록이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보물급 설화자료집이다), 최부 표해록(조선 성종 때 학자 최부가 지은 표류기이다. 최부는 성종 18년(1488년) 1월에 제주도에 파견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배를 타고 나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13일을 표류한 끝에 중국의 강남 지역에 닿았고, 그곳에서 북경을 거쳐 6월 14일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섯 달 동안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멜표류기(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등 제주의 표류 문학에 대해 심도 있는 설화적 접근을 해나갈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