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낯설게 바라보기 ⑦ - 아름다운 버스 정류장
상태바
제주 낯설게 바라보기 ⑦ - 아름다운 버스 정류장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8.31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버스정류장을 뽑는 선발대회가 있다면 나는 제주의 버스정류장을 출품하고 싶다. 아름다운 버스정류장이라고 하면 바닷가가 배경이거나 숲 속 나무벤치가 있는 정류장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제주의 버스정류장은 도심 번화가의 뻔한 풍경이어도 실제로 쓰이는 말들을 품고 있어 아름답다. 2014년에 제주도는 버스 정류장 디자인 개선사업을 벌였다. 제주도내 버스정류장이 구수한 제주어와 마을별 설촌유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정류장 정면으로 ‘웃음과 긍정 제주어 프로젝트’를 주제로 생활 속에서 웃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문구를 써 놓았다. 예를 들어 “버스탈 땐 앞문으로 릴 땐 뒷문으로!!” 같은 문구들이 쓰여있다.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는 커다란 유리창에 글자들을 흰색으로 써서 깔끔하고 캘리그라피로 예술성을 더했다. 버스를 타고 지날 때 나는 이 문장들을 조용히 발음해본다. 무슨 뜻일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나는 제주어를 ‘먼 나라 이웃나라’의 말이 아닌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말로 친숙하게 다가간다. 제주어에 아래아가 살아있다는 걸 버스정류장에 쓰여진 글자들을 보며 다시 깨닫게 된다.

 

유네스코는 2010년 제주어를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험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하였다. 언어의 소멸 위기 정도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는 '언어의 세대 간 전달'인데, 4단계는 노령인구만이 언어를 부분적이고 드물게 사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제주어가 4단계라는 것은 젊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제주어를 사용하는 노령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제주어를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주어는 5단계인 ‘소멸한 언어(extinct language)’가 될지도 모른다.  
‘노인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제주에서 노인 하나가 죽으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체성, 역사, 삶의 지혜, 문화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건 단지 말만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하는 음성, 문자, 몸짓 등의 수단 또는 사회관습적 체계 모두가 언어다. 그래서 SNS로 소통하는 요즘이 우리가 유사이래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읽는 시대라 일컬어진다.
제주어의 특징 중 하나는 중세어인 아래아와 반치음 등의 음가가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슬=가을, 슴=마음, 슬=마을(여기 ㅅ은 반치음), 교=학교,  =바람, 다=날다, 시록=제주만의 조용하다는 뜻, 또한 (쌍아래아)가 남아있는데 라게=여러 개, 물=여물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글자 중 아래아를 표현할 수 있는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은 현재 아래한글이 유일하고, 그마저도 PDF로 변환하면 깨진다.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지역민들, 젊은 세대들, 제주를 사랑하고 관심갖는 사람들이 지역어를 자주 활용할 수 있는 언어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에서 아래아를 표현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모음에 표현되지 않더라도 특수문자로라도 표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이라고 하면 심한 비약일까. 나는 실제로 사용되는 제주어를 영원히 갖고 싶다. 살아 숨쉬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 글·수월심 김현남 불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