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등 이야기 - 등의 기원과 전통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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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등 이야기 - 등의 기원과 전통등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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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기원을 특정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가장 큰 문제는 “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시작되는 기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외에도 많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술적인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등은 정의되어 있으며, 그 이미지도 비교적 선명하게 확인된다.
이런 관념의 기준에서 등은 미의식(美意識)이 생성되는 신석기시대에 기원을 두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후 등은 각 지역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이들은 종교와 결합해 어둠을 밝히는 등의 기능적인 역할 뿐 아니라 관념적인 부분으로 그 영역을 확대한다.

한국의 등문화도 이런 역사적 흐름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신석기시대 등의 탄생하고 청동기시대 원시종교와 결합해 의식이 생성됐으며 불교 전래 이후 대변환의 시대를 맞았다. 그렇다고 기존의 관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불교와 기존사상이 결합하는 형태가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 등은 의식과 기원의 중요한 요소다. 이런 전통은 붓다 재세 시에도 있었으며 붓다 사후 교리의 정립으로 체계를 갖췄다. 한국의 등문화도 불교 유입 후 사상과 형태에서 불교의 전통을 따른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등은 사상과 의식(儀式)을 담은 상징의 존재로 거듭난다. 이렇게 1천 년의 시간이 흐르고 불교의 사회적 쇠퇴기가 찾아온다. 이런 사회흐름에서 등문화도 불교 중심에서 불교에 기초한 민간 중심으로 자리를 옮긴다.
현재 한국 등문화도 “불교를 기본으로 한국적 정서를 담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의 근원인 불교적 요소와 유희 중심의 축제적 요소가 그것이다. 이런 결합은 조선시대 관등놀이로 이어져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 연등회도 이런 의식(儀式)과 유희라는 부분을 동시에 수용하는 형태다. 여기에 과거보다 발전된 형태의 “전통등(傳統燈)”은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과거와 현대를 잇는 접점이 되고 있다.
 전통등은 1996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아직 30년이 되지 않은 단어다. 물론 국어사전이나 민속학사전 어디에서도 ‘전통등’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이 “전통등”을 탄생하게 했을까? 여기에는 당시 불교계를 지배하던 등문화와 관련이 있다.
전통등의 탄생 시기 한국불교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왜색(倭色) 등이 주류였다. 당시는 우리 등의 중요성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우리 고유의 등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였다. 그런데 세기말 불어닥친 우리 문화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은 불교계에도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전통등은 “당시 제품으로 생산되는 기존의 기성품과는 다른 등”을 표현하는 방편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우리 것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당시 상황에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통등의 탄생은 행사기획단(현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주축이 됐다. 우리 등에 대한 자료가 미흡했던 관계로 각종 세시기에서 등의 종류를 파악했고 노스님들과 민속학자들의 고증을 거쳤다.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구술로만 등을 제작해야 하는 관계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검수를 위해 고증자를 다시 찾아 검수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런 난관을 뚫고 이듬해인 1997년 “전통등 시현회”라는 이름으로 한국최초의 전통등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다.
전통등 시현회는 조계사 관음전(현 극락전)에서 전통등 20여점을 전시한 작은 전시회였다. 전시작품도 모두 소품이었으며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지금 기준으로는 부족하고 서툴렀다. 하지만 당시 전통등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이었다. 이때 초파일 제등행렬에 사용될 1미터 남짓의 목어등과 종등도 제작됐다. 이전까지 외부조명을 활용한 조형물과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등이 사용되던 제등행렬에 새로운 유형의 장엄물이 등장한 것이다. 이후 전통등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성장했다. 이는 흔적만 남아 있던 전통등을 세간에 등장시킨 불교계의 헌신적인 노력과 현대작품에도 뒤지지 않는 전통등의 아름다움이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글·김두희 (불빛나들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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