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3)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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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3)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9.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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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내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면의 벽 중 여덟 번째 벽의 아래로부터 세 번째 단 중앙에는 눈 먼 아이가 부처님을 뵈는 ‘맹아견불(盲兒見佛)’이 그려졌다. 서진(西晉, 265-317) 때 섭승원(聶承遠)이 한문으로 번역한  『불설월난경(佛說越難經)』 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후반부에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려 북벌을 감행하는데, 오장원에서 이에 맞선 이가 위나라의 사마의였다. 사마중달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조조의 후예에게서 황제자리를 찬탈하여 건국한 나라가 서진이니 『월난경』이 번역된 때는 대략 300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짧은 경전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먼 아이가 부처님을 뵙다(盲兒見佛)

부처님께서 바라내사국(波羅奈私國, 바라나시)에 계실 때 일이다. 당시 월난(越難)이란 한 장자가 있었는데,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였으나 사람됨이 인색하고 질투가 많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항상 문지기에게 거지가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월난에게는 전단(栴檀)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역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았다. 월난이 죽은 후 다시 그 나라에 있는 눈먼 여인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눈먼 여인의 남편은 아내가 임신하자 눈도 먼데 아이까지 가졌다며 함께 살지 못하겠다며 여인을 쫓아냈고, 여인이 거리에서 출산했는데 아이도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여인은 걸식하며 아이를 키웠는데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이젠 스스로 지팡이를 짚고 걸식을 하되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도록 다음과 같이 얘기하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난한 것이 가장 괴롭습니다. 저는 운명이 야박하여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나 두 눈마저 어두워 보지 못하니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음식을 주셔서 저의 주린 배를 채우게 하시는 분은 목마른 이에게 비를 내려주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아이는 이렇게 집집마다 다니며 빌어먹다가 전생의 아들인 전단의 집에 이르게 된다. 마침 문지기가 잠깐 나가고 없을 때여서 집 안으로 들어가 뜰에 이르러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말했다. 누각 위에 있던 전단이 그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 문지기를 불러 누가 거지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보냈냐고 추궁하자, 겁에 질린 문지기가 아이를 문밖으로 끌어내어 두들겨 팼다. 아이는 머리가 상하고 오른쪽 팔이 부러졌으며 구걸하는 식기는 깨어졌다. 아이는 너무 아파서 문 앞에서 슬피 울고 이 소식을 들은 아이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달려와 누가 이 불쌍한 애에게 무도한 짓을 했냐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제가 이 문안에 와서 밥을 비는데 어떤 사람이 고함지르자 힘센 사람 여럿이 달려와 저를 끌어내고 때려 상하게 했습니다. 몸이 이렇게 아프니 오래잖아 죽을 것입니다.” 
그때 문을 지키는 신이 큰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네가 이런 아픔을 받은 것은 작은 업보에 지나지 않는다. 훗날 더 큰 업보가 있을 것이다. 너는 전생에 재물이 많으면서도 보시하지 않은 까닭에 이 업보를 받게 된 것이다. 부귀하면서도 보시하지 않음은 재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고 나서도 다시 고통 받으니 지나고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아이가 울부짖는 것을 구경하던 많은 이들이 이 소리를 듣고 제각기 말하자 그 소란스러움이 제법 커서 성에서 탁발하던 부처님에게까지 들렸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난이 눈먼 모자의 얘기를 하고 부처님께 불쌍한 아이에게 가보자고 청한다. 탁발을 마친 후 대중들과 함께 아이에게 가서 탁발한 음식을 나눠주고 눈먼 아이의 상처를 보고 손으로 머리와 눈을 만지자 멀었던 눈이 뜨이고 다친 상처도 모두 치유되었다. 이로 인해 아이는 숙명을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 아이에게 물었다. 
“네 전생에 이름이 월난이라는 장자더냐?”
“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매우 어리석어 함께 살던 아비 자식도 서로 알지 못하는구나.”
부처님께서 곧 게송으로 그 뜻을 풀이하셨다.

사람이 자식과 재물을 구하여 
이 두 가지 가운데
매우 걱정하고 근고하다가
사람을 달리하여 과를 받는다
어찌 하물며 자식과 재물이랴
몸도 능히 유지하지 못하거늘

비유컨대 여름철의 더위가
나무 밑 서늘한 데 쉬면
시원한 것 같아도 
금세 다시 사라져버리듯이
세간에 변함없는 것은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눈먼 아이가 목숨을 다하면 어찌 되냐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큰 지옥에 들어가 한 번 머물 것이라 하셨다. 여러 사람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탐, 진, 치를 버리고 법안을 얻었다.
석씨원류 판화(사진 1)와 각원사 벽화에는 이층 누각으로 된 기와집을 배경으로 대문 왼쪽에는 문지기에게 쫓기는 눈먼 아이를(사진 2), 오른편에는 눈먼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처님을 묘사하였다(사진 3). 아이 옆의 젊은 승려는 아난이다. 이 이야기는 눈먼 아이의 눈을 뜨이게 한 기적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인간사의 무상함과 과보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이 얘기가 석씨원류에 채택된 이유는 그보다 보시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석씨원류가 쓰인 1420년대에는 승려가 경전에 능통하지 못하고 멋대로 머리를 깎는 폐해가 발생하자 승려의 도첩을 10년에 1회 발급하고, 승려의 인원과 나이도 제한하였다. 이런 다소 억압된 상황을 감안하면 당시는 승려나 사찰에 보시의 필요성이 컸던 시기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를 구하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들에게 자식과 재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은 쉽게 떼어놓을 수 없다. 가까이 있을 때는 무슨 탈이 없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못하지는 않는지 걱정이 끊이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밥은 잘 먹는지, 일은 잘하는지, 결혼은 언제 할 지 부모의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 그리고 주위에 잘살든 그렇지 못하든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좇으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과 재물뿐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일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이다. 잘 되고 있으면 내가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 우쭐대기보다는 주위의 선의에 고마움을 느끼고, 잘 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 원망하는 대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고, 지금의 고통이 후에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한 배움의 시간이라 생각하자.         

‘여름철의 더위가 나무 밑 서늘한 데 쉬면 시원한 것 같아도 금세 다시 사라져버리듯이 세상에 변함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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