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가는 길 - 월영사 -“바굼지 오름 안고 부처물동에 자리한 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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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가는 길 - 월영사 -“바굼지 오름 안고 부처물동에 자리한 전통사찰”
  • 임과표 기자
  • 승인 2022.10.14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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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상흔 딛고 1962년 월영사 창건
문화재자료 제6호 목조여래좌상 소장해
한국불교태고종 전통사찰 월영사 도량
한국불교태고종 전통사찰 월영사 도량

가을 초입에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억새꽃이 출렁거리며 자연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애조로를 따라 하귀 방향으로 가다보면 나지막한 오름 하나가 보인다. 바굼지 오름(파군봉)이다. 삼별초 항쟁 격전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제주는 오름을 끼고 사찰이 들어서 있다. 부처물동이라 하는 곳에 사찰터도 있었다고 하여 가 보았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굼지 오름 정상에 올라보니 남쪽으로는 한라산과 오름들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수산봉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보고 감각의 욕망을 억제하지 않으며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가 없고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는 사람은 악마가 그를 쉽게 정복한다.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넘어뜨리듯이” 법구경에 나온 부처님 말씀을 새기면서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파군봉(바굼지오름)에 있는 문화재자료 제6호 목조여래좌상을 소장하고 있는 전통사찰 한국불교태고종 월영사를 찾았다.
기록으로 보는 월영사를 살펴보자. 파군봉(破軍峰)을 끼고 흐르는 병풍천 지경에는 예로부터 ‘부처물’이라는 용천수가 샘솟는 부처물동이 위치한다. 부처물동 인근은 조선시대 이래로 월영사(月瀛寺)가 자리 잡고 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주위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하나 부처물이 있는 곳에는 하천과 산이 있어 다소 비탈을 이룬다. 현재 부처물 주위로는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부처물의 동쪽, 남쪽, 북쪽에서는 기와편이나 도자기편이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이곳에 전해오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사찰이 무너지면서 주지 스님이 쓰던 대야가 부처물에 묻혔는데 그 후 비가 와서 물이 넘칠 때면 인근에 대야 우는 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옛 사찰에 모셔져 있던 불상이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월영사 외곽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월영사가 폐사되고 이후 다시 월영사가 세워진 것은 1930년대이다. 기록에는 월영사가 1936년 위봉사 상귀리 포교당으로 계출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월영사는 1943년 포교 규칙 제9조에 의해 본산을 위봉사에서 백양사로 이전 변경하였다. 1945년경에는 사명을 월영사에서 귀이사로 개칭하였다. 그 당시 주지는 한병욱 스님으로 1945년 12월에 개최된 조선불교혁신 제주승려대회에 참석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948년 제주 4·3 사건의 발발로 귀이사는 토벌대에 의해 불상을 비롯해 사찰 안에 있던 모든 불화와 불기가 사찰 전각과 함께 전소되는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그 후 복원되지 못하고 절터만 남아 있다. 1962년 지학 스님에 의해 제주 4·3의 상흔을 딛고 옛 사찰의 명맥을 잇기 위하여 귀이사의 바로 옆자리인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329번지[하귀동남2길 40-16]에 현재의 월영사가 창건되었다. 이후 월영사는 1988년 대웅전을 증축하고 1990년 요사 2동을 신축, 1994년 종각 및 범종 봉안, 1998년 대웅전 단청 불사까지 꾸준히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6년 월영사는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고 향토문화전자대전에 기록되어 있다. 

월영사 소장 문화재 자료 제6호 목조여래좌상
월영사 소장 문화재 자료 제6호 목조여래좌상

본 기자는 보수를 끝마친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4·3에 불타버린 귀이사를 생각하며 아픔을 간직한 채 복원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웅전을 나와 목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들어가 참배를 하였다.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된 목조여래좌상은 정용하가 남선사를 창건하면서 백양사에서 모셔와 봉안한 것이며 이후 남선사가 폐사되면서 월영사의 전 주지인 설우 스님이 월영사를 창건하면서 모셔왔다고 한다. 
월영사 소장 목조여래좌상은 상호의 표현과 균등한 동체의 작풍(作風), 의문(衣紋)과 수인(手印) 등이 아름다운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 및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2004년 9월 14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광령천 하류 사라마을 계곡에 폭우로 인하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광령천 하류 사라마을 계곡에 폭우로 인하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월영사 주변을 둘러보자. 고려 시대 삼별초와 관련된 항몽유적지가 있고 바로 아래 구시물 용천수와 극락사가 자리하고 있다. 300mm 폭우가 오면 무수천 하류 사라마을 광령천은 제주 나이아가라 폭포가 생기며 유유히 월대천으로 흐른다. 또한 수산봉과 수산저수지가 있어 올레길을 찾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있는 길을 걷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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