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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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올바른 이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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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은 ‘야외강단’ 의 준말이고
법석은 ‘설법의 자리’ 라는 뜻
부처님은 길을 좋아하시고
대자연을 사랑하였기에
들판 자체가 법좌이고 야단법석
김성도 포교사(봉림사 신도회장)
김성도 포교사(봉림사 신도회장)

불교용어인 야단법석(野壇法席)의 뜻은 표준 국어사전에서 고사성어화 되어 시끌벅적한 행사 장소에서 야단(惹端)치는 표기로 잘못 표현되었다. 원래 야단법석의 올바른 뜻은 법당 안에서 치를 수 없는 큰 규모의 법회를 야외에서 임시로 법석을 마련하여 불교행사를 봉행하는 무대를 뜻한다. 야단은 ‘야외강단’의 준말이고 법석은 ‘설법의 자리’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대중에게 법화경을 설파할 때의 일화가 야단법석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위해 각처에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너무 많이 모여 들었으니 그 수가 300만 명에 이르렀다. 영취산 자락에서 자리를 만들고 법화경을 설파하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다 보니 부처님을 더 가까이에서 친견하여 설법을 듣기 위해 자리싸움 등으로 어수선했다. 여기서 파생된 시끌벅적했던 법석의 자리가 고성방가로 야단치는 부정의 모습으로 퇴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처님의 생애를 불교미술로 묘사한 팔상성도에서 살펴보면 탄생에서 열반까지 대자연 속, 야단법석에서 탄생, 전도 포교가 이루어졌다.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에서 25년 간 안거한 기록이 있고 금강경을 이곳에서 설하시고 부처님께서는 대자연 속에서 거룩한 법륜을 굴리셨다. 어머니 마야부인께서 왕자인 싯다르타를 잉태하고 산달이 되자 당시 습속에 따라 친정인 카필라 성으로 가던 도중에 룸비니동산의 무우수 밑에서 태자가 탄생한다. 하늘에서는 제석천왕의 비단을 가지고 내려와 태자를 받으며 온갖 보물을 공양하고 아홉 마리의 용의 깨끗한 물을 입으로 뿌려 태자를 목욕시키며 여러 천신들이 보호하고 기뻐한다. 부처님께서 사방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설파하셨으니 야단법석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태자를 가마에 태워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의 ‘비람강생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부처님은 출가 전 태자로 있을 때, 왕성을 떠나 사대문 밖을 나가 대자연을 벗 삼아 산책을 좋아하셨기에 그 과정에서 생, 노, 병, 사의 고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다. 동문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허리가 굽은 백발노인을 보고는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남문 밖에서는 신음하는 병자를 보고 병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을 알았으며, 서문 밖에서는 상여 행렬을 보고 세상에 태어난 자는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북문 밖에서는 모든 괴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이 보이는 수행자를 보고서 생로병사의 고민을 해결할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이 과정을 ‘사문유관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해탈 법을 배우고자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는 태자라는 지위와 명예, 부귀영화를 모두 포기하였음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늦은 밤 성문을 나서기로 결심한다. 태자 나이 29세 2월 8일에 마침내 성을 나선다. 한참을 갔을 때 왕궁과 멀어지자 태자가 지닌 천관과 보배를 마부 차닉에게 건네고 자신은 생사의 법을 없애고 세상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 출가한다는 뜻을 아버지 정반왕에게 전하라는 부탁을 한다. 
차익은 왕궁으로 돌아와 정반왕에게 태자의 천관과 보배를 전하며 태자의 출가를 알리는 모습이 ‘유성출가상’에 묘사하고 있다. 
출가한 싯다르타 태자는 궁으로 돌아오라는 부모와 아내의 애절한 환궁을 거절하고 수행정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행을 자처하며 깨달음을 얻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정진고행품’을 보면 손바닥으로 곡식을 받아 연명할 정도로 겨우 음식을 섭취하며 정진하길 6년이 되자 태자의 모습은 80이 넘은 노인처럼 보였다. 기력이 없어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두 눈동자는 깊이 들어갔으며, 뼈마디는 앙상한 모습이었다. 이때, 일체의 지견(知見)을 이루고 성취 원력으로 기운을 차리기 위해 음식을 먹고 네란자라강에서 목욕재계 후 보리수 아래 앉아 수자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받는 모습이 ‘설산수도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태자는 부처가 되기 위해 보리수 아래서 우유죽을 먹고 불퇴진의 다짐으로 목숨을 건 수행으로 선정에 들어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려는 이 때 파순 마왕의 성도를 방해하고 나섰다. 마왕의 세 딸을 보내 요염하고 교태로운 모습으로 유혹했을 뿐만 아니라 아홉 가지 이변으로 공격했으나 태자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 받고 청정한 마음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세계를 꿰뚫고 나니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여실히 보게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지혜를 얻은 부처님 나이 35세 12월 8일 새벽에 일어났다. 부처님의 수인은 마귀를 항복시킴을 상징하며, 온 대지가 이를 증명하는 항마촉진인 모습이 ‘수하항마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문강사  삼회향 놀이에서 난타공연팀이 야단법석을 펼치고 있다.
문강사 삼회향 놀이에서 난타공연팀이 야단법석을 펼치고 있다.

부처님께서 위없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시고 거룩한 초전법륜을 편 곳이 녹야원 법좌이다. 부처님께서는 길을 좋아하시고 대자연을 사랑하였기에 들판 자체가 법좌이고 야단법석이다. 
교진여 가섭 아슈비지트 바드리카를 위해 설하신 사성제와 팔정도, 12연기, 중도관을 듣고 오비구는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이를 ‘녹원전법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열반은 니르바나의 음역으로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조금도 쉼 없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여 주셨다. 여러 경전에서 열반에 대한 설법이 나오는데 불본행경 대멸품에서는 대열반에 들기 위해 쿠시나가라 사라(沙羅)나무 숲 쌍수(雙樹)에 이르러 아난에게 자리를 깔도록 한 후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 머리를 북쪽에 두고 다리를 포갰다. 왼쪽 하단에는 부처님의 관위로 엎드려 있는 스님과 관 주변에 여러 명의 스님이 서 있는 모습은 삼처전심의 곽씨쌍부를 표현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8말 4되가 나왔으며 숭배의 대상의 됐다. 여러 왕족들의 서로 가지겠다고 분쟁의 조짐마저 있었으나 결과는 사이좋게 여덟 등분으로 나누었으나 분배가 끝난 후 도착한 핍팔리바나의 모리야족은 사리가 아닌 재만 갖고 떠났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현재 세계 각국으로 퍼져 사리탑 보궁에 봉안되어 숭배하고 있으며, 이때가 부처님이 80세가 되시던 2월 15일이며, ‘쌍림열반상’에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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