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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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5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0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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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에는 북쪽에 작은 출입문이 나 있다. 이 출입문 서쪽 편의 안쪽 벽은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9번째 벽이다. 이 벽에는 석씨원류의 120번째에서 132번째까지 총 13장면의 판화가 그려졌다. 진행 순서는 다른 벽과 마찬가지로 아랫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맨 윗열 왼쪽에서 끝난다. 각 장면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5단    132 소아시토(小兒施土)     131 귀모심자(鬼母尋子)    130 금강청식(金剛請食)
4단    129 불구영아(佛救嬰兒)     128 목련구모(目連救母)
3단    127 시식연기(施食緣起)     126 도제분인(道除糞人)    125 구도적인(救度賊人)
2단    124 불화추아(佛化醜兒)     123 도포렵인(度捕獵人)    122 도망어인(度網魚人) 
1단    121 불도도아(佛度屠兒)     120 사천우불(祀天遇佛)
  
이들 각 장면의 주제는 외도, 어부 등을 교화시키고 사냥꾼 등 살생을 하는 사람들과 얼굴이 추한 사람, 도둑, 똥 치우는 사람 등 신분이 처하거나 죽음에 처할 사람을 교화시키거나 불제자로 받아들이는 내용과 수륙재와 우란분재의 기원 및 전생에 지은 과보에 대한 내용이다. 먼저  〈사천우불〉 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소, 말, 양 등 많은 동물을 천신에게 제물로 바치려는 화묵(和墨)이라는 외도 왕에게 부처님께서 동물을 제물로 바쳐 제사지내는 일은 자비를 행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시며 광명을 발하여 두루 비추자, 화묵이 허물을 뉘우치고 불법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불도도아〉는 외도들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부처님을 질투하여 백정의 아이에게 동물을 살생하게 한 뒤 부처님을 초청하여 대접하게 하면 부처님이 아이의 복을 찬양하면 아이의 앞의 살생의 죄를 묻고, 부처님이 아이의 죄를 설하면 아이로부터 받은 복을 가지고 부처님을 비난하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부처님께서 아이의 집에 이르자 제도할 사람이 있음을 알고 광명을 비추며 설법을 하자 백정은 물론 부처님을 비방하려던 외도들도 오체투지하며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사문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사진 1) 각원사 벽화 부처님께서 추한 아이를 교화하다
(사진 1) 각원사 벽화 부처님께서 추한 아이를 교화하다
(사진 2) 고개지의 여사잠도 중 외모보다 마음 닦기를 강조하는 장면
(사진 2) 고개지의 여사잠도 중 외모보다 마음 닦기를 강조하는 장면

 〈도망어인〉과  〈도포렵인〉은 어부와 사냥꾼을 제도하는 내용이고, 〈불화추아〉 (사진 1)는 짐승들조차 피하는 얼굴이 몹시 추한 아이가 사람들을 기피하다가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데, 부처님을 보고 피하려 하자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추하게 생긴 사람을 만들어 그가 동질감을 느끼며 편하게 어울리게 하다가 갑자기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게 하자, 아이가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저 나무 아래서 수행하는 비구들을 보았더니 그리 됐다고 하니 자신도 그를 따라 하자 선한 마음이 일어나 마음이 흐뭇하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아이를 위해 설법을 하고 제자로 받아주었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 중독에까지 이르는 현실과 비교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중국의 화가 중 인물화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는 동진 때의 고개지(顧愷之)가 그렸다는  〈여사잠도〉 (영국박물관 소장)는 궁중 여인들이 지켜야 할 올바른 행실에 대한 글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 중 네 번째 장면은 거울 앞에서 화장하고 머리 손질하는 장면이 그린 그림(사진 2)이고, 그 앞에 ‘사람들이 얼굴은 다듬을 줄 알지만 마음을 닦을 줄은 모른다. 도끼로 고치고 끌로 다듬어 단정한 품성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불화추아〉 의 주인공은 추악한 용모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이고,  〈여사잠도〉  의 주인공은 궁궐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두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추악한 용모도 부처님께 귀의하고 마음을 닦으면 극복할 수 있는데, 추하지 않은 데도 마음을 닦기보다는 외모에 더 치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멀리 있지 않고, 어렵지 않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선한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아름다워 진다.   
 〈구도적인〉 은 사위국에 오백 명의 도둑이 있었는데, 국왕이 이들을 잡은 뒤 모두 사형시키려고 하자 도둑들이 울며 큰 소리로 부처님을 부른다.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왕에게 가서 한 사람을 죽이는 죄도 큰 데, 많은 이들을 죽인다며 그 죄가 무량하니, 부처님께서 이들을 교화시킬 것이니 석방시켜 달라고 청하라 명한다. 이에 왕은 이들이 다시 도적질을 하지 않게 해 주기를 청했고, 부처님께서는 오백 도둑을 제도하여 출가시켰다.

불가촉천민의 아이를 출가시키다

(사진 3) 각원사 벽화 분뇨 치우는 아이를 제자로 삼다
(사진 3) 각원사 벽화 분뇨 치우는 아이를 제자로 삼다
(사진 4) 석씨원류 판화 도제분인
(사진 4) 석씨원류 판화 도제분인

  〈도제분인〉(사진 3, 4)은 인분을 치우는 일로 생계를 꾸리는 불가촉천민의 아이를 출가시킨 이야기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인분을 치우는 아이를 보고 부르자, 아이는 부처님께 가 자신은 똥을 짊어진 더러운 몸이라 감히 고귀한 분 가까이에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이에게 출가시키려고 한다고 말씀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강가로 가서 씻기고, 기원정사로 데리고 가서 여러 사문들에게 명하여 아이를 사문이 되게 하셨다. 아이는 용맹 정진하여 곧 아라한과를 얻었는데, 당시 사위국 왕이 부처님께서 천한 아이를 제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부처님이 궁에 들어올 때 제자들도 함께 오는데 어찌 자신이 천민에게 예를 올릴 수 있냐며 부처님께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이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가는 길에 한 비구가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을 뵙자 오는 도중에 본 비구는 어떻게 그런 신통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그가 똥 치우던 이며, 더러운 진흙에서 깨끗한 연꽃이 생기는 것과 같은데, 어찌 국왕께서는 그 꽃을 얻지 않느냐고 설하였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왕이 그 비구를 청하여 공양드리고 생활에 모자람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깨달음에는 귀천이 없음을 강조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 후기 청나라를 여행한 후  〈열하일기〉 ,  〈양반전〉 등을 써서 허례허식에 빠진 양반을 비판한 박지원이 쓴  〈예덕선생전〉 을 연상케 한다. 선귤자라는 당시 덕이 높은 사람의 한 제자가 스승에게 스승이 분뇨를 치우는 엄행수를 예덕선생이라 부르며 벗이라 칭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하자, 선귤자는 엄행수가 비록 비천한 일을 하지만 욕심이 없고,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으며, 항상 겸손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에 그를 스승처럼 생각하고 감히 이름을 부르지 못해 예덕선생이라 한다고 했다. 겉으로는 비천하게 보이나 행동은 고매한 엄행수와 겉으로는 고매해 보이나 그 속은 비천한 당시 양반들을 대조시켜 신분 차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관계에 신분보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분명하다. 깨달음에는 차별이 없으며, 타인에게 무례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며 계를 잘 지키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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