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16 - 사바세계의 현실 자체가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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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긴 선취여행 16 - 사바세계의 현실 자체가 ‘고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1.30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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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깨달은 법은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괴로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영원불멸의 법칙……
그저 묵묵히 부처님의 길 따르라는
왕범지의 詩 돋보여
곽경립(시인, 수필가)
곽경립(시인, 수필가)

우리가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프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는 일이 죽는 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석존 역시 혜택받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혼자서 깊은 명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석존이 인생의 고뇌를 몰랐다면 즐거움이 가득한 현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선택하였겠습니까, 출가한 석존은 6년의 수행을 거쳐 마침내 ‘깨달은 자’가 되어, 스스로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설했던 것입니다. 
‘고苦’라는 말은 부처님의 첫 말씀인『숫타니파타』 와『담마파타;법구경』 을 위시한 초기 경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고苦’에는 육체적 고통도 있겠지만, 대체로 심리적 고통을 말합니다. 아마도 사바세계(suha̅loka)의 현실 자체가 ‘고뇌’라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고뇌는 왜 생기는 걸까요, 우리가 살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느끼는 고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욕망(탐욕·애욕·집착 등)으로 생기는 고통일 것입니다. 또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삶 자체가 고뇌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법은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괴로움(dukha)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영원불멸의 법칙이었습니다. 초기 경전인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권 14, 제5경을 보면,
“무엇을 괴로움의 본바탕이라 하겠는가? 소위 태어남의 괴로움(生), 늙음의 괴로움(老), 병듦의 괴로움(病), 죽음의 괴로움(死)처럼 번민과 걱정의 괴로움(憂悲惱苦)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운 사람과의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이것 역시 괴로움입니다. 그러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느끼고 애착하기를 습관화하여 싫어하지 않고 마음이 항상 그것을 탐하는 것(苦習諦)을 말합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를 무엇이라 하나요? 애욕을 물리쳐 조금도 남지 않게 함으로써 다시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苦盡諦)을 말합니다. 무엇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苦出要諦)라 하는가요? 바로 깨달은 자의 여덟 가지 수행 방법(八正道)을 말합니다.”라고 고苦의 원인과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팔정도八正道는 출가한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수행 방법이며, 일반 재가 신도들은 삼보三寶에 귀의歸依를 받아들이고, 이와 더불어 살생하지 않는다(不殺生). 도둑질하지 않는다(不偸盜). 사음하지 않는다(不邪婬). 술 먹지 않는다(不飮酒) 등의 오계五戒를 지키면 된다고『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권 20, 제1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괴로움의 진리(苦諦)’는 우리에게 비록 즐거움이 있더라도 이는 영원한 즐거움이 아니며, 세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고苦인 것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번뇌라 하며, 일상에서는 ‘백팔번뇌’라 부릅니다. 오늘은 한시漢詩인데도 한글 시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시 한 편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왕범지王梵志(590?-660)는 초당初唐의 시인으로, 위주衛州의 여양黎陽(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준현浚縣) 사람으로, 일설에 중년 이후 가업이 기울어 불교에 귀의했다지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가 쓴 시들은 주로 불교의 사상이나 현실 세태를 풍자하고, 백성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의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口語)를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있습니다. 또한 평범한 언어 속에 신랄함이 배어있어 음미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의 시는 사막 지역이며 중국 변방인 감숙성 돈황에 묻힌 책 속에 몇 편이 남아있을 뿐, 대부분은 유실되어 남아있지 않습니다.
위 시는 약간의 한자를 알기만 하면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구는 노자와 장자, 그리고 주역인 삼현三玄을 비유로 응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죽어서 극락에 태어나기 위하여 수행을 열심히 하고, 살아서는 복을 많이 받으려고 착한 일 한다면, 모두 쓸모없는 짓이라고 은근히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그저 묵묵히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는 나의 모습을 보라,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보며 비웃을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참뜻을 깨달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길을 가는 것은, 심오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의 탐심을 버리고 스스로 평온함을 찾으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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