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석 - 마가 스님 백일명상 - “기도와 수행은 하나이며 지혜를 닦는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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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석 - 마가 스님 백일명상 - “기도와 수행은 하나이며 지혜를 닦는 수행입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2.08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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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제대로 이뤄지면
세상과 나, 사물과 나, 사람과 나,
이런 다양한 관계들이 부드러워지고
삶을 풀어갈 해법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로 확장됩니다
마가 스님
마가 스님

“스님, 기도하면 정말 이루어집니까?” 
“스님, 기도 잘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스님, 제 기도는 왜 이뤄지지 않죠? 어떻게 하면 되나요?”
많은 분이 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기도의 방법과 응답을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왜 기도를 하고,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를 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처한 현실을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상황에 부닥치면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기도를 합니다. 병을 낫게 해달라고, 아이가 좋은 학교에 가게 해 달라고, 시험에 꼭 붙게 해달라고, 좋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등 원하는 바를 이뤄달라고 기도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지혜를 닦는 수행입니다. 내 마음의 모든 것을 비우고 일체가 무상(無常)함을 깨닫는 순간에 드러나는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다시 환하게 밝히겠다는 깨달음의 방편이지요. 이렇듯 수행 방편으로서의 기도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와 다르게 보이지만, 크게 보면 같습니다.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의 끝도 종국에는 수행으로서의 기도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메커니즘(mechanism)으로 살펴볼까요. 기도가 간절해지고 깊어질수록 마음은 가라앉고 고요해집니다. 바깥으로 뻗치던 정신이 내면으로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면서 거친 부유물이 가라앉고 투명한 보랏빛 액체만 남는 것과 같습니다. 갈등과 욕심, 슬픔, 고통 등 온갖 번뇌가 사라지고, 본래 고요하고 본래 깨끗하고 본래 텅 비어 있던 자리가 드러납니다. 그 자리와 내가 하나가 되면서, 그전까지 보지 못하던 것들을 인식하고 느끼게 됩니다. 지혜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이뤄달라는 기도 역시 기도가 잘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이 단계에 이릅니다. 우리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기도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이고 부처님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기도가 계속될수록 절박함은 잦아들고 기도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게 됩니다. 차츰 나를 힘들게 한 고통에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덜 아프게 느껴집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심신이 안정되면 지금 나의 상황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게 됩니다. 문제로만 여겼던 일도 더는 문제가 아니게 되지요. 간절히 바라던 소원은 ‘부처님 뜻대로 해주십시오.’로 바뀝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에 대해 기다릴 줄 아는 여유도 생깁니다. 마음이 안정되니 주위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게 되어 불편했던 인간관계도 편해집니다. 나아가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당신도 나처럼 힘들게 살고 있구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구나’ 하는 마음이지요. 이렇듯 기도가 제대로 이뤄지면 세상과 나, 사물과 나, 사람과 나, 이런 다양한 관계들이 부드러워지고, 삶을 풀어갈 해법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로 확장됩니다. 기도하면 이뤄지는 ‘기도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바람들, 내가 이것이라고 고집했던 삶의 해법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기도는 수행의 자리로 옮겨갑니다. 본래 고요하고 본래 깨끗하고 본래 텅 비어 있던 마음자리를 확인하면서,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도, 그 자비심이 결국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가 됨을 깨닫는 수행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기도를 통해 반드시 구할 수는 없더라도, ‘나’는 분명히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불교의 수행은 마음을 맑고 깨끗이 하여 일체가 하나임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지난날에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좋지 않은 업(業)을 참회하고 없애며, 현재의 자기 자신을 바르게 봄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의식입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돌아보고, 나와 연결된 모든 인연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탐(탐욕), 진(성냄), 치(어리석음)를 알아차리는 지혜가 생겨나고 원인과 결과의 인연법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가장 중심이 되는 나를 변화시키고 바꾸려는데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서둘거나 굽히지 않고 조용히 서서히 꾸준히 노력한다.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처럼 자기 마음의 때를 씻어 벗긴다.” 《법구경》에 담긴 부처님 말씀입니다. 서둘지 않고 굽힘 없는, 꾸준 한 노력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참회와 발원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행복의 열매를 맺으려면 행복의 씨앗을 심고, 깨달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깨달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기도는 온 마음을 다하여 씨앗을 심는 실천의 행(行)입니다. 기도를 통한 깨달음의 열매를 거두려면 5가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출리심(出離心), 보리심(菩提心), 자비심(慈悲心), 알아차림 서원 세우기입니다.
⓵ 출리심 :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 윤회를 끊어내겠다는 결심이다. 일상에서 윤회를 끊겠다는 것은 전생, 내생의 개념보다는 ‘지금의 괴로운 나’는 그동안의 나의 생각과 말, 행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수행을 통해 현재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수행과 기도는 모두 출리심에서 출발한다. 
⓶ 자비심 : 나와 타인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고통스러울 때 다른 이들도 나처럼 고통을 겪는구나, 공감하게 되는데 진정한 자비심은 여기서 나온다. 나의 고통과 슬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타인의 고통에 눈을 뜨게 된다. 
⓷ 보리심 : 자비심의 토대로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에 머물것이 없는지, 큰지 작은지 매 순간 살펴보는 마음이다. 마음은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욕망을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마음을 알아차림 하여 출리심과 자비심과 보리심으로 다시 되돌린다. 
⓸ 서원 세우기 : 출리심과 자비심과 보리심을 내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그러한 씨앗을 심는 것이다. 불교에서 서원은 나를 위한 다짐이 아니라 철저하게 타인을 위한 마음을 가리키며, 그 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간절한 마음과 정성으로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깨달음과 행복, 지혜는 이처럼 다섯 가지 마음을 조화롭게 갈고 닦는 씨앗을 심을 때 비로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 자비, 사랑이며, 이 에너지가 없는 기도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전화선을 통해 전화를 거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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