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21) - 도덕경 - “탐욕이 없기에 법이란 것도 필요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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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하는 ‘노자’ 산책 (21) - 도덕경 - “탐욕이 없기에 법이란 것도 필요 없는 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1.0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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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이상적 국가, 소국과민
백성들 개개인의 자발적 자치 가능해

 

소국과민은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이다. 이는 무위 관념의 필연적 산물이며, 노자 정치사상의 구체적 표현으로 패권을 일삼는 당시 세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국가 형태이다.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 세계는 인위적인 문화 체계도 없고, 소박한 사람들이 타자와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융화되어 살아가는 세계다. 이들에게는 경쟁심이나 분쟁을 일으킬 만한 지식이 없기에 다툼이 없으며, 탐욕이 없기에 법이란 것도 필요가 없다. 이들은 국가라고 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은 국가의 간섭없이 스스로 질서를 이루어 통치한다.  
국가가 커질수록 국가 권력은 비대해지고, 국가 권력이 비대해지면 국가 권력을 장악한 권력자들이 국가를 이끌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수 권력자들의 전횡이나 횡포는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국과민은 국가가 작은 단위로 쪼개져 권력이 해체되어 백성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자치가 가능하다. 
소국과민에서는 무기까지 포함해 많은 도구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배나 수레를 포함하여 그러한 도구들은 모두 자신이나 사회 혹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나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 봉사한다. 소국과민에서는 이런 도구들은 외부로 향한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위적 가치와 기준에 매몰되어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 모르고 외부로 향한 욕망에 이끌려 손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줄을 묶어 약속의 표시로 삼는 결승(結繩) 문자는 문자 가운데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노자는 소박하게 결승 문자로 소통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그 거처를 편안하게 하고, 그 풍속을 즐기며 자족하는 삶을 살라 하고 있다. 
장자 「거협」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옛날에 …북희씨, 신농씨의 세상이 있었다. 그 때 백성들은 새끼를 묶어 기호로 썼고, 그 음식을 맛있게 여겼으며, 그 옷을 훌륭하다 생각했고, 그 풍속을 즐기며, 그 집을 편안히 여겼다. 이웃 나라가 바로 앞에 보이고, 닭이나 개 울음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였지만,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오가지를 않았다. 이와 같은 세상이야말로 가장 잘 다스려졌던 지치(至治)의 시대이다. ”  
우리는 지금까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문명관으로 우열을 가늠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노자가 주장하는 국가 형태는 몸을 갖고 사는 한 의식주를 기본으로 하여 백성의 진정한 행복을 급선무로 여기는 무위 정치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물질적 가난으로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정치는 무위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충족되고 자연의 본성대로 살게 되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근접한 이웃나라끼리 왕래를 하지 않고 살게 된다. 
무위의 정치는 분별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무절제한 욕망의 추구를 멈추고 도의 참모습과 자연의 원리를 인식하여 이에 순응한다. 비록 작은 나라일지라도 백성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저마다 자기 생활에 만족하면서 여유를 느끼고, 권모술수와 투쟁 대신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노자는 통치자가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보았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많은 것이 필요하지 는 않다. 먹고, 입고, 자는 데 우리는 너무도 많은 자원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어쩌면 이 기본적인 것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되어 국가가 이 기본적인 것을 위협한다. 끊임없는 경쟁 사회로 내몰리고, 전쟁에 휩싸이고, 지향점을 내세워 이상을 추구하게 하여 이 기본적인 것을 이루게 하지 못하게 한다. 노자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며 참된 국가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글·고은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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