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아란나(阿蘭那) 행자
상태바
출리산방의 엽서 - 아란나(阿蘭那) 행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1.18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아요 / 눈이 내리면
당신은 창문을 열고 숲으로 간다는 것을
회색 옷을 겹으로 입고 /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눈밭 속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어버린다는 것을
(… 중략 …)
물론 알아요 / 눈이 날리면
문명의 병속에 갇혀있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야성이 깨어 일어나 / 날아오르는 눈발이 되어서
온 산천을 헤매다 / 지쳐서야 돌아온다는 것을

#1 인경 스님의 <자화상>이란 시의 6연 가운데, 1∼2연과 5∼6연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눈[雪]’, ‘숲’, ‘문명의 병’이라는 시어를 통해 오염된 문명사회를 떠나 고요한 숲속에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수행하는 출가사문의 고고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스님은 전통적 간화선 연구자이자 학자로서 위빠사나를 국내에 전파하고, 서양의 심리학을 한국불교에 접목한 장본인으로 교계 안팎에 명상상담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인경 스님과는 오래전 인연이 있습니다.
지난해 동지의 전후로 전국적으로 폭설과 한파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제주도에도 강풍과 폭설로 배편은 물론 항공편이 대부분 결항되었습니다. 필자도 사나흘 출근도 하지 않고 아란야 농원에 칩거하며 명상과 관련된 책들을 읽던 중, 책 속에서 인경 스님과 만났습니다.  

#2 저가 20년째 주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감귤과수원은 제주시 아라1동 아란(阿蘭) 마을에 있습니다. 한자의 아란나(阿蘭那)는 산스크리트어의 ‘arana’를 음역한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다툼 없음(無諍)’의 뜻을 갖고 있고, 또 대승의  『금강경』 (제9품)에서도 수부띠(수보리) 존자를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밝히고 있어서(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과원의 이름을 ‘아란야’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농장에 머물 때는 마음에 평화가 깃듭니다.

#3 문득   『금강경』 의 수부띠(Subhūti) 존자가 생각났습니다. 사왓티의 제따와나 급고독원을 기증한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장자의 동생으로 급고독원(기원정사)의 개원식 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자애와 함께하는 禪(mettā-jhāna)을 닦아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로 숲에서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합니다. 평화는 다툼이 없다는 뜻인데, 그 다툼(rana)이란 욕망(rāga) 등의 오염원(kilesa)를 의미합니다. 이런 해로운 마음씨가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a-rana)해서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은 금강경을 한역하면서 무쟁삼매(無諍三昧)와 아란나행자(阿蘭那行者)라고 옮겼다고 합니다. 
석가세존께서는『앙굿따라 니까야』 (A1:14)에서 “다툼 없이 머무는 자들[無諍住], 가운데서 수부띠 존자가 으뜸이다.”이라고 말씀하셨고,  『맛지마 니까야』   「무쟁의 분석 경」 (M139)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이 존자를 칭송하고 계십니다.

#4 동안거 석 달 동안 선방에서 참선하는 눈 푸른 납자들이나 강원에서 경전을 독송하며 불법의 요체를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는 스님들도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입니다.
국내외 세속인들이 안거 중에 템플스테이 하려고 명산대찰을 찾아 해동불교 문화의 향기에 젖으면서 지친 심신을 힐링하며 스스로 정화를 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5 사부대중들이 조석으로 삼귀의 예불을 올리고, 공양하고, 수행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명상과 수행은 문명사회 밖으로 나가거나 도망치는 게 아니고 그 사회로 다시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그런 것들과 연관된 온갖 복잡한 것들을 등지고 명상을 하고 평화를 찾기 위해서 고요한 숲속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 각자가 가슴으로 겪고 있는 온갖 고통, 그것은 바로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것이기에 당신은 숲속에서 혼자 머물 때도 그것을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나 제 자신이나 명상하고 수행하는 것은 각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가 아닐까요.

#6 부처님께서는 출가사문이 일시적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구족하려면 대중에서 멀리 벗어나 혼자 머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석가세존 자신도 보살이었을 때 다섯 수행자(오비구)와 함께 수행할 때 일체지의 공덕을 얻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떠나고 홀로 머무실 때 보리좌에 올라 일체지의 공덕을 일으켰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리의 즐거움, 떨쳐버림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은 괴로움을 가져오지 않고 성가심을 가져오지 않고 절망을 수반하지 않고 열병을 수반하지 아니하므로 바른 도 닦음이며 무쟁의 법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7 살다보니 벌써 망팔을 바라봅니다. 예전보다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더 골이 깊어지고, 특히 정치의 양극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 검은 화산재를 토해내며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오염시키고 있어서 근심과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들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부처님께 귀의한다.”라고 염불하면서 붓다의 지혜와 연민이 내 안에 생명으로 살아있기를 다짐합니다. 
새해 계묘년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지혜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온갖 갈등과 대립이 다소나마 해소되길 기원해 봅니다. 
 「법구경」 (80.)에는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치수자는 물길을 이끌고 / 화살 만드는 사람은 화살대를 곧게 하고 / 목수는 나무를 구부리고 /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

/恒山 居士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