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⑩ - "관리들의 전복착복에 포작인들이 도망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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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⑩ - "관리들의 전복착복에 포작인들이 도망가기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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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12월 30일 비

해남(포작인) 

장한철 표해록에는 전복과 귤 이야기에 비해 해녀 이야기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제주도 해녀와 오키나와 해녀는 언급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항파성 싸움에 패한 삼별초가 오키나와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웠다는 근거를 기와 모양에서 찾는 학자도 있는데 관심을 가진다면 예로부터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상당히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6세기경 삼국유사에서 제주도 전복을 캐서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삼국사기에도 제주의 전복 이야기가 있는 데 이때 해녀는 해남(남자 해녀)도 아우르는 말로 전복 따는 남자(포작인)를 크게 구별하지 않았다.
 
남사록에 의하면 제주에서 진상하는 전복 수량이 많은 데다 관리들이 착복하는 게 몇 배 더 많아 포작인들이 이를 견디지 못해 도망가기에 이르며 해남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다.

필자가 강원도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근방 횟집에 들렸을 때 그 집에는 해남이 있었다. 귀덕리가 고향인 부부가 해녀로 민박, 식당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그에게서 해남이 사라지게 된 동기를 엿볼 수 있었다(문헌에 나온다). 
해녀가 바닷일을 하려면 알몸이어야 비상시 대피하기도 수월하고 몸도 자유로워 보통 바닷일로 물속에 들어갈 때 알몸이었다. 이렇게 남녀가 알몸으로 바닷물에 들어가는 걸 금하면서 해남도 사라졌다는데….


해녀들은 간혹 전복 속에 들어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되면 횡재했고 ‘심 봤다’를 외칠 만큼 아주 좋은 돈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장한철이 쌍 진주(진주 두 개)를 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즈음, 육지 상인 백사렴이 탐라 상인 강재유에게 회유를 하며 농을 건넨다. 뱃사람 특유의 농담과 허풍과 여유에 너털함이 함께 배어난다.

“이 진주를 내게 외상으로 파시오. 그러면 고국으로 돌아간 뒤 50금으로 갚아주겠소.”
탐라 상인 강재유가 눈을 흘기며 육지 상인 백사렴에게 대꾸한다.
“장한철 선비님에게 드리지 않고, 당신한테 주어서 값을 받을까?”
장한철은 만면에 웃음 기를 거두고,
“그대가 이미 진주를 캐었으니 응당 값을 받고 팔 것이지, 왜 내가 그것을 갖겠소?”
탐라 상인 강재유가 거듭 장한철에게 주겠다는 걸, 거절함에 육지 상인 백사렴에게 진주를 건네면서 다시 말했다.
“이 쌍 진주는 값이 200금 아래로 내려가진 않을게요. 하지만 내가 굳이 그 값을 다 받겠소? 나중에 100금만 갚으면 좋겠소.”
육지 상인 백사렴이 얼버무렸다.
“50금이면 그 값에 알맞겠소. 100금은 너무 많소이다.”
드디어 두 상인이 흥정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졌으나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서역 ‘장사치’(장사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들은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만 리 길 모진 파도에 밀려 살아 돌아갈 기약도 없는데, 오히려 이익을 따지며 흥정하는 두 사람을 보니 제 몸을 갈라 구슬을 감춰둔 서역(중국의 서쪽 지역을 통틀어 이르던 말) 장사치와 뭐가 다르랴?

 「서역 장사치란 장사를 할 때 자신의 몸을 학대해서라도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섣달그믐에 만 리 떨어진 곳에서 잠시나마 전복 두 개가 뱃사람들에게 조그만 여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잠시 후 침묵이 흐르며, 고향을 생각하면서 몸 기댈 곳도, 집도 없는 일행은 서로 마주 보며 울었다.

잠시 후 사공 이창성이 장한철에게 물었다.
“탐라의 바다는 바람이 불면 파도가 크게 쳐 배가 침몰당합니다. 이는 파도가 아주 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닷길에서 한라산을 지나 남쪽으로 오니, 바람이 비록 세게 분다 해도 파도는 험하지 않고 배가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 무슨 까닭입니까?”
장한철이 대답한다.
“지구상의 땅덩어리를 보면 중국에는 평원과 광야가 많고, 사방에는 높은 산과 큰 못(물)이 많구려.”

우리나라는 산천이 흐르고 솟음이 급하여 5리마다 산이 하나 있고, 10리마다 강이 하나 있다. 땅의 맥은 백두산으로부터 나와 열려 조선 땅이 되었다.
조선의 땅은 남쪽으로 내려와 소안도, 추자도, 탐라도 등 여러 섬이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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