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0)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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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0)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28)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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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 벽에는 네 개의 벽면에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졌는데, 대웅전 내부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0~13번째 벽이다. 가장 북쪽의 10번째 벽에는 총 14장면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들은 석씨원류의 석가모니 관련 이야기 205장면 중 133~146번째 이야기이다. 각 장면은 다섯 단에 세 열로 나누어 그려졌는데, 순서는 맨 하단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상단 왼쪽으로 진행된다. 아래에서 두 번째 단 중앙에는 137번째 장면인 보시를 강조하는 시의득기(施衣得記)가 자리하고 있다. 


옷을 보시하여 수기를 받다(施衣得記)

부처님께서 쉬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머물던 어느 날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려 할 때, 한 바라문이 부처님의 옷이 해어진 것을 보고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흰 천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천을 받으시고 그에게 백 겁 이내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하셨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작은 보시에 큰 과보를 주는 것을 보고 들은 쉬라바스티의 장자와 거사들은 각기 좋은 천으로 갖가지 옷을 만들어 부처님께 바쳤다. 그러자 아난이 부처님께 전생에 어떤 선행을 닦으셨기에 중생들이 저렇게 다투어 옷을 보시하는지 가르쳐달라고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수없는 아승기겁 전에 비발시(毘鉢尸) 부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한 대신이 부처님과 제자들을 청하여 석 달 동안 공양드리겠다고 하니 부처님께서 승낙하셨다. 그때 반두(槃頭)라는 왕도 부처님께 공양드리길 청하였는데, 부처님께서 대신으로부터 먼저 초청받았다고 하며 왕의 청을 미루었다. 이에 반두왕은 대신을 불러 자신이 부처님께 공양드리려고 했는데 대신이 먼저 청하였다고 부처님께서 미루시니 자신에게 순서를 양보하면 어떻겠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자신의 목숨과 부처님께서 그곳에 머무는 것을 보장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해주시면 자신의 청을 물리고 왕께서 먼저 공양드리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왕은 서로 하루씩 번갈아가며 모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대신은 제안을 승낙하고 부처님을 위하여 세 가지 옷을 마련하고, 제자들에게도 한 벌씩의 옷을 보시하였다. 
아난아, 그때 대신으로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옷을 공양한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이니라. 나는 세상마다 이렇게 복 쌓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옷을 얻게 된 것이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정성껏 복업을 닦기로 하였다. (현우경, 13권 제55 범지시불납의득수기품(梵志施佛納衣得受記品))

이 이야기가 실린  『현우경(賢愚經)』 은 445년 혜각(慧覺)이 번역한 총 13권 62품으로 구성된 경전이다. 부처님과 제자들, 바라문, 거사, 미천한 사람들 및 새와 짐승 등의 다양한 인연 이야기로 냉엄한 인과응보의 법칙이 중심 주제이다.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여 경 이름도 현우경이라 붙여졌다. 이 경전에는 ‘시의득기’ 이야기 외에 살타태자가 새끼를 낳아 힘이 없는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보시하는 마하살타이신시호품(摩訶薩陀以身施虎品, 1권 2품), 아쇼카왕이 전생에 흙장난하다가 흙으로 된 밥을 부처님께 공양하여 수기를 받은 아수가시토품(阿輸迦施土品, 3권 17품), 가난한 난타 여인이 등불을 공양한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 3권 20품), 월광왕이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머리를 보시한 월광왕두시품(月光王頭施品, 6권 30품), 수달장자가 기원정사를 보시하는 수달기정사품(須達起精舍品, 10권 41품) 등 불교 미술로도 많이 표현되는 유명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보시는 대개 자신이나 가족 또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위해 하는데, 여기에 실린 주인공들이 큰 과보를 받은 것은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남 또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해 보시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이나 신수대장경에 실린 이 ‘시의득기’에는 부처님의 옷이 해어진 것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며, 아난에게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에 과거의 비발시 부처님께 옷을 공양한 대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며, 그런 공덕을 여러 세를 거치며 쌓았기에 부처님이 되셨고, 중생들이 다투어 옷을 보시하는 까닭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석씨원류의 ‘시의득기’에 대한 설명에는 부처님께서 옷이 해어진 것을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려고 한 내용과 아난이 과거에 어떤 선행을 쌓았기에 중생들로부터 옷을 공양받느냐고 부처님께 여쭈는 장면이 빠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난에게 하는 이야기에서 비발시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옷을 보시한 대신이 쉬라바스티의 바라문이며, 그가 대대로 복덕을 쌓아 마침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서 옷을 보시하고 수기를 받게 된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일부 내용이 바뀌게 된 것은 경전의 내용을 285자로 줄이는 과정에 만들어진 오류로 여겨진다. 앞의 전제가 되는 내용을 빼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수기를 받은 바라문이 다른 인연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묘사된 것이다.        

(사진 1) 석씨원류 시의득기 판화
(사진 1) 석씨원류 시의득기 판화

석씨원류 판화(사진 1)와 각원사 벽화(사진 2)에는 우측의 누각 중앙에 부처님이 앉아 있고, 그 좌우로 아난 등 제자 2명이 협시로 서 있다. 그 아래에는 옷을 보시하는 바라문이 묘사되었다. 화면 왼쪽의 마당에는 발우를 들고 걸식하는 부처님과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싶다고 청하는 바라문의 모습이 표현되었다.  
이 ‘시의득기’ 장면은 통도사 영산전의 상벽(사진 3)에 그려진 석씨원류의 불전도 26장면에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특히 이들 불전도 26장면은 영산전에 봉안된 팔상도에 그려진 여러 장면들과 중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벽을 화려하게 장엄하는 효과와 함께 팔상도에 빠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완하고 교화 및 보시를 강조하는 의도로 선택되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화면이 좁은 공간이다 보니 옷을 부처님께 보시하는 장면만 그려졌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멀지 않은 이때 보시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 동물, 환경 등 모든 것에 조금 더 따스한 손을 내밀어보자.  

(사진 2) 각원사 대웅전 서벽 시의득기 벽화
(사진 2) 각원사 대웅전 서벽 시의득기 벽화
(사진 3) 통도사 영산전 상벽 시의득기 벽화
(사진 3) 통도사 영산전 상벽 시의득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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