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2] - ‘을묘왜변 제주대첩’ 의 장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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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 “을묘왜변 제주대첩” [2] - ‘을묘왜변 제주대첩’ 의 장소를 가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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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포에서 망경루까지

지난 해 말에 화북포구에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을묘왜변 제주대첩이 시작된 지점이 화북포이다. 화북포로 상륙하였다는 기록은 김석익의 『탐라기년』에서 확인된다. 조선전기에는 수전소조차 설치되지 않았던 포구였는데, 왜구들은 어째서 제주성 앞의 건입포도 아닌 화북포로 침입하였던 것일까?
화북포가 제주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는 기록은 최부의 『표해록』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을묘왜변 이후 화북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653년에 화북포 수전소와 1678년 화북진성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왜구가 침입하기 쉬운 장소들마다 환해장성이 축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북포는 제주 역사의 한 가운데 있어 왔다.
학자들은 이미 건입포 등에 수전소 등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왜구들이 수전소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화북포를 최적의 상륙지점으로 판단하였을 거라고 보고 있으며, 그 외에도 뱃길, 물 때, 지형, 전술 등의 문제 등을 염두에 두기도 한다. 이 문제들은 향후 더 연구가 되어져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22년 설치된 화북포구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지석
2022년 설치된 화북포구 을묘왜변 제주대첩 표지석

이곳 화북포에서 전투가 있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왜구들이 이곳에 상륙하여 거로마을과 사라봉 일대를 지나 제주성으로 이동하여 전투를 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시작으로 화북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북포에서 거로, 사라봉을 거쳐 제주성 인근 고릉으로 이동한 왜구는 해남의 달량진성이나 완도의 가리포진성 공략에서처럼 높은 지역을 배후로 삼아 제주성 안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기록에 의거하면 산지천 동쪽 높은 언덕에 진을 쳐서 제주성을 포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주성 동성(동문)과 산지천 사이, 남수각 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555년 6월 27일 3일간의 전투는 치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원진의 『탐라지』 황후헌 운주당 기문에는 당시 전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55년(명종 10년) 여름에 해구(海寇)가 침범하여 이리저리 날뛰며 성을 포위하고는 높은 능선에 웅크리고서 성안을 내려다보며 접근을 하는데 화살과 돌이 뒤섞여 내려오니 군진의 허실과 사졸의 강약은 등불을 켜고 숫자를 헤아리듯 점칠 수 있었다.”
당시 싸움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3일간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화살과 돌이 뒤섞여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분투하였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그 용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낳는다. 그리고 궁극에는 이 전투에서 왜구를 끝까지 추격하여 대파하였으며, 왜선들을 포획한 것을 보면 당시 제주사람들의 기개와 일체심이 대단하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제주MBC다큐멘터리-4인의 치마돌격 전사들 영상 캡쳐
제주MBC다큐멘터리-4인의 치마돌격 전사들 영상 캡쳐

현재 제주성은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오현단(五賢壇) 남쪽에 그 일부가 복원되었으며, 곳곳에 그 잔해가 남아 있다. 성의 규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둘레 4,394자, 높이 11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러 차례 증축과 퇴축이 있은 후 성의 둘레는 6,120자, 높이가 13자가 되었으며 더욱 높고 견고해졌다.

일부 복원된 제주성지
일부 복원된 제주성지

을묘왜변 제주대첩 후 명종은 김수문 목사 등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전공자들에게 포상하였는데, 김수문 목사는 1556년 을묘왜변 제주대첩 익년에 명종의 배려에 감복하여 어의에 보답하는 뜻으로 제주목관아 연희각 동북쪽에 망경루를 지었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임금님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망경루는 조선시대 전국 20개 목 중 유일하게 제주목에만 있었던 2층 누각이다. 
일제강점기에 해체되었던 망경루는 2007년 국비와 지방비 11억원을 들여 숙종28년(1702년)에 제작된 탐라순력도(국가지정보물 제652-6호)을 바탕으로 복원공사 후 준공되었다. 제주목관아지 내부에 있는 망경루가 을묘왜변 제주대첩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그간 을묘왜변 제주대첩에 대한 교육이나 스토리텔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 및 지방에서 승전에 대한 역사와 관련 인물을 중요한 기념대상으로 삼아 정기적으로 공동체의 중요 행사로 진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주목관아지 망경루
제주목관아지 망경루

을묘왜변 제주대첩과 관련하여 역사 기록에 남겨진 장소는 화북포를 비롯해 사라봉, 남수각, 제주성지, 제주목관아 망경루까지 이어지는 공간적 동선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성의 퇴축 및 확대와 관련이 있으며, 그로 인해 생겨난 시설 등과도 연결이 된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위에 또다른 역사들이 덧대어졌다. 
화북포에서 만나는 환해장성을 비롯하여 별도연대, 화북진성, 곤흘동 마을을 거쳐 별도봉, 사라연대와 산지항, 산지천, 남수각, 제주성지, 운주당, 오현단, 제이각, 목관아지, 망경루까지 을묘왜변 제주대첩이 말하는 역사적 장소는 우리 옆에서 고스란히 숨쉬고 있었다.
만일, 오늘 그 길을 걷게 된다면, 1555년 이 계절에 있었던 을묘왜변 제주대첩의 역사를 한번 즈음 생각해보면서 거닐면 어떨까 한다. 

숨겨진 역사유랑 치마돌격대 그림 캡쳐
숨겨진 역사유랑 치마돌격대 그림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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