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17) - 지음인(知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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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17) - 지음인(知音人)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5.3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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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교제하기 때문에 오염원의 덤불이 생기고
 교제하지 않으면 끊어지노라.
 작은 널빤지에 올라 서 있는 자는
 큰 바다에 가라앉듯이
 그와 같이 게으른 자를 만나면
 좋은 사람도 가라앉고 말리라.
 그러므로 게으르고
 정진이 부족한 자를 멀리하고
 한거하고 성스러우며
 스스로 독려하고 참선을 하며
 항상 열심히 정진하는 
 현자들과 함께 머물지어다.” 

이는  《여시어경》(It3:29)에 나오는 세존의 게송으로 인생을 슬기롭게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이와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지혜는 무명을 밝히는 빛과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관계를 맺습니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부부 사이의 만남, 직장 동료와의 만남, 학교 동문과의 만남 등 온갖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만남이든 우연한 만남이든 만남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남에 있어서 소중하게 챙겨야 할 것은 바른 깨달음을 도와주는 좋은 도반, 좋은 벗, 좋은 친구가 자기 곁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출가사문과 재가수행자인 청신사, 청신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에서는 선지식善知識, 즉 정법을 가르치고 타인을 불교에 들게 하고 해탈을 얻게 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우리에게 설법 제일로 알려진 ‘부루나’ 존자, 유명한  「역마차 교대 경」 (M24)의 주인공이 좋은 도반들 가운데 으뜸가는 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절반 경」(S45:2)에는 선지식과의 사귐의 유익함에 대하여 출가자 또는 재가자 모두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벗과 사귀면, 그는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를 닦을 것이고, 팔정도를 많이 공부 지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설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주로 출가사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교계 싱갈라 경(육방예경)」 (D31)에서는 재가불자가 가정 및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불교적 윤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슴을 나누는 친구’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친구,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 바른 것을 조언해주는 친구, 연민하는 친구는 선善남자라고 합니다.

친구 없이 사는 것은 사막에 거처하는 것과 같고, 벗 없는 인생은 험난하고 위험합니다. 하지만 저열한 성향을 지닌 닮은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어울린다면 전염병과 같이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을 집었던 손에서 생선 냄새가 나고, 향주머니를 집었던 손에서 향내가 나듯이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언젠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되고 좋은 친구와 어울리면 친구의 감화를 받아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길벗의 있음과 없음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중국 춘추시대의 고사인 ‘백아단현伯牙斷絃’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음악인들 사이에선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에겐 거문고 소리를 잘 감상해주는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습니다. 종자기는 백아가 ‘고산가’를 탈 때면 “참 아름답도다! 태산처럼 높고 장중하여라.”라고 찬탄하고, ‘유수곡’을 연주하면 “정말 좋도다! 장강과 황하처럼 유장하구나.”라고 탄성을 연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병으로 죽자 백아는 두 번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고 거문고 줄까지 끊어버렸는데, 이후 ‘斷絃’이란 말은 지기知己를 잃음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답니다.

망팔望八을 지나서 “나는 누구의 백아이며, 종자기인가?”라고 반문해 봅니다. 
내 안에 일곱 줄 위에서 출렁이는 거문고 소리가 잠재했음을 알고 수필 문단에 등단케 해준 학창시절의 국어선생님은 글벗이고, 불교 수행의 기초인 염(念, sati)각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주의 유마거사가 길벗이라면, 내자의 쓴 소리는 나의 인욕바라밀을 도와주는 ‘송풍한松風寒’입니다.  
다만 솔바람 소리를 좋아하는 내 이야기를 요즘 사람들이 종자기처럼 그다지 많이 듣는 것 같지가 않아서 유감일 뿐입니다. 
내자는 내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슬프고 외로울 때 백아처럼 탄금彈琴을 잘하나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내가 고집불통이라서 가끔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부부끼리는 마치 강이 급류와 함께 물결이 휘몰아칠 때 오직 키의 힘으로 배가 머물 수 있고 키 없이는 머물 수 없듯이 생사윤회의 기나 긴 여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의지처가 됩니다. 

세존께서 <육방예경>에서 이르기를, 남편은 “존중하고, 얕보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고,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를 사주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아내를 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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