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 호국불교의 참뜻 헤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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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호국불교의 참뜻 헤아리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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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6월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이다. 총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호국의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칼을 든 스님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중심세력은 전직 관료나 유생이었으나 특수부대로서 승군의 활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금산전투에 참여했던 영규靈圭나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은 수천의 문도에게 구국 궐기를 촉구하여 승군을 일으키고 전국의 각 사찰에 격문을 띄워 의병봉기를 재촉하였다. 
  이에 그의 제자인 처영處英은 호남에서, 유정惟政은 관동에서 승군을 일으켰으며 이에 호응하여 전국의 사찰에서 승군이 일어나 위기의 조선을 구하는데 앞장섰다.

  신라인들이 생각한 호국의 ‘국國’이란 국가와 왕실이 아니라 ‘화엄불국’ 즉, 부처님의 정법이 시현되어 일체 중생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세상이었다.
  7세기경 신라의 용화향도龍華香徒들은 신라 땅이 바로 불국토요, 그 국토의 주인이 되기 위한 원력 보살의 현신이라는 신념을 갖고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조성했고, 삼한통일의 위업을 이루고자 황룡사구층탑을 건립했다. 
  고려 후기에 몽고가 침입했을 때 고려인들은 한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와 위력을 빌어 이를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조판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세기 초입에 우리는 경술국치,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다. 구한말 최고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였던 황현黃玹은 “적이 우리를 먹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에게 먹힌 것이다.”라고 말했다. 망국의 원인은 일제의 침략 이전에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지적이다.
  항일독립운동에 몸 바쳐 오늘의 대한민국 건립에 이바지한 선열들 가운데 대각사의 백용성 스님, 만해 스님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불자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한다. 우리 불자들이 그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면 도리가 아니고, 잊고 산다면 죄짓는 일일 것이다.

  도내에선 무오년(1918년) 법정사 무장 항일운동이 일어나 기미년 3·1운동을 비롯한 이후의 무장 항일운동의 방향을 향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다만 그 주동 세력이 순수 출가사문인지 여부, 그리고 참여계층의 성분 등에 관하여 설왕설래가 있어서 불교사적 의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여 진다.

  육지에선 한결같이 ‘살아서 불꽃이었고 죽어서 별빛이 된’ 설악산 백담사 만해 스님이 있다.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의 초안에 가필하고 ‘공약3장’을 직접 추가하였고 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함께한 태화관 기념식에서 “최후의 1인까지 정정당당하게 조선의 독립 쟁취를 위해 싸우자.”라고 격려사를 낭독했다.
  이 사건으로 만해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아 징역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1925년 백담사 말사인 오세암에 들어가 참선 수행을 하던 중 매월당 김시습이 쓴 <십현담요해>을 읽고 그 책 속에 담긴 선禪의 진수를 깨달았다. 
  그해 8월 자신의 영감과 수행체험에서 생겨난 신선한 에너지를 쏟아가며 저 유명한 ≪님의 침묵≫이란 시집을 발간했다. 
  후학들은 이 시집에 담긴 깊은 뜻을 세 가지로 평한다. <첫째> 이 시집은 누구나 그리워하는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이고, <둘째> 이 시집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민족의 독립을 슬퍼하고 갈망하는 내용이 실려 있고, <셋째> 이 시집에는 매우 깊고 넓은 불교 철학, 즉 팔만대장경에 실린 내용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우리말로, 그리고 시의 형식을 통해 풀이하고 결정結晶시켰다고 한다. 
  만해는 1931년 10월에는 자신이 편집 겸 발행인을 맡아서 ≪불교≫ 잡지에 ‘조선불교개혁안’을 발표하여 다양한 분야의 불교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또 불교도의 자각만이 불교 개혁과 불교 발전과 민족불교의 지름길임을 호소했다.

  한국불교 1,600여년은 호국불교의 역사이다. 불교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정법을 유통시켜 국민정신을 일깨움으로써 끊임없이 호국보민護國保民의 시대적 역할을 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지와 탐욕과 성냄의 기운이 성해서 시계 제로의 상태다.
필자가 오늘에 이르러 만해를 소환한 까닭은 호국불교의 참뜻을 되새겨 죽은 불교가 아닌 ‘살아있는 불교’를 찾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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