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인도성지순례(2) - 아잔타 전망대에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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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인도성지순례(2) - 아잔타 전망대에 오르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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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석굴은 자비의 힘으로 어떤 침략에도 드러나지 않았다”

델리에서 국내선으로 탑승한 후, 데칸고원의 아잔타 마을로 들어섰다. 일기예보를 보니 더워질 날씨에 대비하여 아침에는 반소매 차림으로 나섰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오르니 기온 차이로 한기를 느껴 긴 옷을 껴입었다. 
마을 입구에는 붉은 사리 차림의 여인들이 천막을 깔고 합장하며 앉아 있다. 마을 회의를 하는지 많은 사람이 질서 정연하다. 머리에 하얀색 터번을 두른 남자가 있어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장례 치르는 상주집이라 하였다. 업장 소멸을 바라는지 안에서 의식 중이다. 이곳에선 장례를 치를 때에 화려한 색인 붉은 옷을 입고 있다. 
예전부터 아잔타 마을은 버려진 땅이었다. 데칸고원의 주민은 불가촉천민으로 구성되어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살았다. 근래에 인도 정부 고위간부직에 불가촉천민이 선출되어 특구를 조성하였다. 한정된 아잔타 특구에서 목화재배를 마음 놓고 짓게 했더니 주민의 삶이 나아졌다.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이지만, 아잔타 마을 사람 모두는 불교를 믿고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아잔타 석굴의 영향이었을까. 땅이 척박하고 물도 귀한 고원지대에 부처님의 자비가 임하셨나 보다. 
목화를 실은 화물차가 지나간다. 화물차는 가벼운 목화솜을 키 높이 막대를 세우고 경매장소까지 오가면 한 달 정도 걸렸다. 데칸고원에서는 목화가 유일한 작물이다. 목화는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운다. 처음에 붉은색으로 피었다가 씨가 익으면 다시 하얀 솜이 꽃으로 피어난다. 인도 날씨는 밤에는 살얼음이 생긴다. 이 마을 사람은 솜이불을 덮을 정도로 추워 목화를 재배한다. 물레를 돌리고 원시적 농법에 불가촉천민끼리 뭉쳤다. 
버스가 아잔타 전망대 입구로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상여를 메고 뒤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길게 보인다. 메고 가는 운구 행렬도 눈에 익숙한 옛날 방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버스가 한참 지난 뒤에 행렬은 너른 공터에 도착했다. 안내원은 오른쪽 창가 쪽으로 시선을 유도했다. 도랑을 끼고 노천 화장터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 고인은 마을 유지인 듯하다. 
갠지스 다비장이 아니어도 지류의 도랑만 있으면 좋은 나무를 준비하여 화장한다. 상주는 시신에 성수를 묻히고 온전하게 태운 후 남은 재 한 줌 들고 갠지스강에 뿌리러 떠난다. 온 동네의 애경사를 내 일처럼 챙기는 전통적인 협동문화의 잔재를 이곳에서 만났다. 조물주는 세계 어느 곳이든 비슷한 문화를 창조해 주셨나 보다. 
왜 힌두인은 화장 재를 강물에 뿌리고 목욕 후 그 물을 먹으며 살아갈까. 매일 성수를 적시고 의식을 치르며 내세 환생을 빈다. 힌두인이 80%가 넘는 인도에서 빈부의 차가 없어지지 않는 점은 내세 환생이 허구성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거리마다 손 벌린 병든 사람과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은 진짜와 가짜가 섞여 갠지스에서 고행하고 있다.
비위생적인 수질과 석회암 성분이 많은 강물도 바나나 잎이 정화 시켜 준다. 버려지는 바나나 잎은 강을 뒤덮을 듯해도 물을 정화 시켜 준 뒤 강바닥에서 녹아 없어진다. 바나나 농사는 일년생으로 물가를 따라 심어야 풍부한 잎사귀와 열매도 튼실하다고 했다. 세상 이치의 무량함에 다시 배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잔타 석굴 꼭대기 전망대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을 내려다보니 양산을 받쳐 오가는 물체가 아득하다. 그랜드캐니언처럼 계곡이 깊다. 사방이 훤하게 비추어 반원형의 석굴들은 손바닥 안에 놓인 듯하다. 전망대 위에 서자 타임머신을 타고 아무나 갈 수 없는 아랫마을에 순회 중이다. 불교 유적은 이슬람 세력에 탄압받아 흙과 밀림에 묻혀 있었다. 18세기 말에 영국인이 사냥 중에 발견하였다. 아잔타 석굴은 불심으로 부처님의 기운이 후세에 발하셨나 보다. 
데칸고원은 물이 마른 분지이다. 홍수가 나면 산 위 아잔타 마을에서 석회질 빗물이 흘러 지표가 낮은 반원형의 아무르강에 닿는다. 발아래 까마득하게 위치한 강물 주변으로 거대한 현무암 바위산이 하나로 이어졌다. 윗마을에서 내린 석회질 섞인 빗물은 검은 바위가 누런색으로 변하게 작용하였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멀리서 보면 폭포 같다. 
수행자들은 그 바위산에 서른 개의 굴을 파서 생활하였다. 종교가 무엇이기에 혼자 잘살려고 산으로 갔을까. 도구를 이용하여 굴을 파며 숙식에 지장 없게 숨어들었으니 온전한 유적으로 남았다. 굴 안에는 이백여 명 이상 앉을 수 있는 법당과 이 층에 넓은 승방이 공존하고 있다. 바닥에 골골이 패인 돌 자국은 참수행이 어떤 것인지 눈물 나게 했다. 중생이 성불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대대손손 구원받으려 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종교의 참 의미를 반추했다. 
석굴 천장과 벽면에 조각된 부조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다. 자연염료가 된 꿀과 달걀노른자는 노란색이 주원료가 되어 지금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스투파를 하나의 바위에서 둥글고 긴 모습으로 만들었다. 천장에는 고행상의 표상인 인체의 갈비뼈를 어찌 파 내렸을까. 
아잔타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부귀공명도 누리지 못하고 먹는 일에도 한계를 느꼈으니 어찌 지냈을까. 오로지 불교를 대대로 믿으며 가족 중에 출가를 시켜야 후손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겼나 보다. 어마어마한 석굴의 규모를 보니 근처 마을 사람이 몇백 년 동안 울력에 동원되었을 듯하다. 그 인원도 상상할 수 없다. 아잔타 석굴은 자비의 힘으로 어떤 침략에도 드러나지 않았다.
조물주는 굼부리 형의 석굴을 감춰지게 만들고 후세에 발견하게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도 먹고살게 배려하였다.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는 폭포가 선명하게 흐르는 듯하다. 자연이 주는 위대함에 입을 다물게 한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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