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 마음의 오염 수(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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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마음의 오염 수(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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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김승석

  후쿠시마 원전 오염 수 방류 문제가 대한해협을 가운데 둔 한·일 양국 사이에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한반도의 동남해안에 위치한 제주·부산·울산·경남·전남 등 연안 5개 시도의 주민들 대다수는 그 오염 수 방류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지난 15일 발표된 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2023 한·일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사성 물질 희석 후 바다로 방출하기로 한 일본 정부 결정에 찬성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한국인의 83.8%는 반대, 11.9%는 찬성이나, 일본인의 60%는 찬성, 30%는 반대로 나타났다. 
  여기서 한·일 양국 국민들의 상반된 인식만 확인했고, 일본의 민심은 자리이타가 아닌 자국이기주의에 빠져있음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방류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이며 권위 있는 기관의 논증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염 수 방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궁금증이나 우려는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북태평양 해류가 시계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을 여과시킨 오염 수는 일본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알래스카, 캐나다·미국 서해안을 돌아 필리핀,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귀환하게 되고, 그 일부가 4∼5년 뒤에 한반도의 동남해로 온다고 해도 오염수의 삼중수소(트리듐) 농도는 극히 미미하여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한다. 

이 견해를 전부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염 수 방류는 ‘대증요법’일뿐이고 ‘원인요법’은 아니라고 보여 진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쪽의 변화가 다른 한쪽의 변화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는 어패류나 해초류들은 그 오염수를 먹고 자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과학기술이라는 도구로 태평양을 희생물로 삼고 해양 생태계를 유린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난 세기 군국주의 일본세력들이 동아시아를 무력으로 침탈하였듯이 광활한 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자 공격적인 태도가 아닌가.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 우리의 식탁에 오를 때마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자연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 존재인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자아 보호 본능 내지 불안감이 도출되자 아이들에게 먹일 건어물과 천일염을 사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가 하면, 횟집이나 일식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은 자칫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오염 수 방류 후 위험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이 확산될 경우 국내 수산물의 소비 위축은 불 보듯 뻔하고, 수산업 종사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산업화된 국가들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 다양한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청정 제주에도 서쪽의 농·축산 활동으로 인해 질산성 질소로 지하수 오염 수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연안의 청정수역들도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되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바다 속에 사는 생명체들의 변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자연에서 오염현상이 생겨난 것은 인간 내면에 심리적 오염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꼭 깨달아야 한다. 생태 오염 현황을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탐욕에 불타는 자아의식부터 비판하지 않고는 근본적 대책을 세울 수 없을 법하다. 만일 깨끗하고 청정한 환경을 원한다면, 도덕적·정신적 차원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방식부터 택하고 볼 일이다. 

 땅과 물과 대기의 오염이 자연 질서에 인간의 개입한 탓이라고 한다면, 자연 환경의 개선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책임감’으로 행하는 인간의 개입에 의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다에 오염 수를 방류하는 일, 화학적 폐기물을 무단 투기하는 일 모두 무지에 빠져 마음이 오염된 탓이다. 그 오염, 번뇌 망상을 팔정도의 물로 씻어 내고 그 빈자리를 자애의 마음으로 충만해야 하겠다.

  《숫따니빠따》의 <자애 경>에 있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조려 본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어떤 것이든
 연약한 것이든 튼튼한 것이든
 길든 중간치든 짧든
 거대하든 미세하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든
 멀리 살든 가까이 살든
 태어났든 태어나려고 하고 있든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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