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1) - 표류 연도가 바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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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1) - 표류 연도가 바뀌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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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일행이 조천항에서 출항하여 한담항으로 입항까지의 일련의 과정 중 해가 바뀐(1771년 1월 1일) 기점이기에 장한철 표해록 해부의 한 단면을 먼저 약술하고 다음 회(012)부터 차례로 연재물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장한철 표해록 원본에 따르면, 사실 원본은 없다. 필사본이다. 장한철 일행이 1770년 12월 25일 출항부터 기록해 두었던 장한철 일기 형식의 에세이 서필책은 풍랑을 만나 바닷물에 떡이 되어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기적처럼 장한철과 생사고비를 맞는 순간까지 행랑이 바닷가로 따라 올라왔지만 이미 글씨는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장한철은 이듬해 고향 애월리 한담(기록엔 없다. 추정할 뿐이다)에 돌아와 옛 기억을 되새겨 기록한 책이 표해록이다. 그래서 장한철 표해록은 기억을 더듬어 쓴 필사본이라 할 수 있지만, 필자는 그냥 원본이라 표현할 때가 많다. 

장한철이 과거에 급제하여 대정현감, 강원도 취곡현령(정병욱 해설 참고)을 지냈는데 그 일가가 거주하는 곳이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현재 이북 지역으로 된 관계로, 장한철 표해록 원본 출처를 두고 이런저런 야화가 있는바, 그 야화도 희미한 기억을 하는 분도 지나가는 풍문을 들었다는 데까지만 확인할 수 있고 또한 민감하게 보이는 사항이라 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장한철을 현재 남산파, 종파, 경파, 진갑파 네 파를 아우르는 인동 장씨(인동仁同은 경북 구미시 및 칠곡군에 위치하는 옛 인동군仁同郡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입도 7세손으로 부르기로 의논을 모았다고 볼 수 있다(필자는 인동장씨 입도 14세손으로 중앙 장씨 문중 회의, 중앙 족보 등을 통해 장한철의 본가(파)를 확인하려 중앙 문중회에 찾아가 알아볼 참이다. 어느 기록에는 해주 장 씨라 된 것도 있다.) 

이제까지 확인 파악한 바로는 장한철 본관은 인동이며, 호는 녹담이다. 
장한철은 1771년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한 후, 1774년 어사 시취로 열린 제주 도과에 합격한다. 전시직부의 특권을 얻었으며 1775년(영조 51년) 별시 문과에 급제(성적은 병과 27등)했다. 
급제 후 내직으로 승정원 주서, 성균관 학유, 성균관 박사, 성균관 전적 겸 양현고 주부, 이조낭청, 평시서 주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강원도 상운찰방(부임하여 금강산 유산기인<금강은유록>을 저술했다), 흡곡현령, 제주 대정현감을 지냈다.

왜 조천항에서 출항하였다고 필자는 보는가? 장한철 표해록은 국립중앙도서관(심성재 필사본, 필자가 여러 번 확인하고 요청하고 신청해 본 결과 수장고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잘 찾지 못했다. 추후 다시 확인할 참이다), 국립제주박물관에 보관된 장한철 표해록 필사본, 일본어 장한철 표해록 송창빈 번역본, 정병욱 옮김 장한철 표해록, 한창훈 동화 제주선비 표류기, 김지홍 역 장한철 표해록, 장영주 읽기 쉽게 쓴 장한철 표해록이 있으며 장한철 표해록 필사본(원본)을 다시 복사한 복사본 표해록(일반 인쇄소에서 몇 부 복사), 정솔미 논문(장한철 표해록의 야담적 전이 양상), 진선희의 제주바당 표류의 기억(조선 시대 표류 기록 중 장한철 표해 서술, 논문도 있다) 등이 있는 데 출항, 입항 장소를 서술하지 않았다. 다만 장영주 장한철 표해록에는 출항을 조천항으로 보는 것은 조천관에서 장한철 일행이 출항을 하기 위해 하룻밤을 지냈다는 확실한 출처에 근거를 두었다.

왜 애월 한담으로 귀향한 거로 보는가? 1771년 1월 5일 자 일기에서 한라산이 보이니 설문대할망에게 살려 달라 기원하는(설문대할망 첫 기록물이 표해록이다) 모습을 볼 때 한라산이 설문대할망 모습과 유사하게 보이는 곳이 한담이다(사실 설문대할망 얼굴 모습과 정말 닮게 보이는 곳은 노인성 관찰지 삼매봉 부근이다). 이에 이런 기억을 되새기며 조천항을 통해 입항한 후 한담으로 귀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한담에는 오래전부터 장씨 문중이 살았기에 그곳을 필자가 운영위원, 추진위원 당시 생가라 하기로 하여 복원 후 필자의 저서 장한철 표해록에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며 애월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장황하게 열거한 이유는 오늘부터 나가는 장한철 표해록 해부 11호부터는 표해록 일기가 연수(1771년)가 바뀌고, 장한철 『표해록』 은 최부의 『표해록』과 더불어 조선과 외국(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표류해양설화문화민족성을 이해하는 디딤돌로 해양문학의 백미라 일컬어지고 있는 표해록을 전문 역사 학자 처지가 아닌, 기록에 의해 서술된 자료를 근거로 채록 정리 취합하여 돼 집어 새롭게 선보이는 설화적 측면에서 쓰려 함이다. 물론 역사, 기록, 고증 등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거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김지홍 교수가 장한철 표해록을 다시 쓰고 있음에 비춰(족보를 확인하고 있는 걸 참고) 설화적 측면에서 바라본 일을 중심으로 설문대할망, 청산도 과부, 노인성, 불로초 등은 로미오아 줄리엣, 이도령과 성춘향, 홍윤애와 조정철, 로빈슨 크로스 등과 연계해 필자가 모아 둔 야화도 약간은 곁들이며 설화전문가 관점에서 주변 지인의 경험담을 곁들여 리얼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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