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댓불 - 장아찌로 나누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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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댓불 - 장아찌로 나누는 행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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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찌를 좋아한다. 올해도 풋풋한 봄 향기와 함께 어김없이 장아찌 계절이 돌아왔다. 오늘은 퇴근하면서 여러 가지 채소를 장바구니에 가득 채우고 왔다. 장아찌 재료를 챙기기 위함이다. 해마다 장아찌 계절이 되면 장아찌를 담가야 하는 의무감마저 생긴다. 어쩌다 시기를 놓쳐 장아찌를 담그지 못하면 주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살림을 챙기지 못한 마음이 들기도 하여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나라 전통식품인 장아찌는 지역이나 계절에 따라 생산이 많이 되는 채소류를 가지고 담그는 것으로 마늘, 양파, 고추, 무, 비트, 양배추 등을 장아찌 재료로 쓰인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쓰임이 많은 것은 마늘이다. 사전에 의하면, 마늘은 중앙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지역이 원산지이다. 백합과(白合科) 중 가장 매운 식물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극동(極東)지방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품종 또한 다양하다. 오늘날에는 마늘이 웰빙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2002년 미국『타임 Time』지에서는 마늘이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의 장아찌를 떠올리면 마늘장아찌가 전부였는데 요즘에는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돼서인지 사람들이 요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장아찌도 다양하게 응용을 한다. 마늘, 양파, 셀러리, 오이, 파프리카 등 종류도 다양한데 저마다의 맛과 향도 달라서 식탁에 올리는 주메뉴의 음식에 따라서 장아찌도 다르게 식탁에 올리게 된다. 
장아찌를 좋아해서인지 재료를 고르는 일에도 신중하게 된다. 언젠가 남편은 밤늦게 장아찌를 담그는 나를 보고 “채소만 보이면 간장에 담가버린다”라며 웃음을 보내온다. 다양한 종류의 장아찌는 식사시간에 식탁을 풍성하게 꾸밀 수도 있지만, 보관이 용의하지 않는 채소로 장아찌를 담그면 요즘처럼 물가가 올라서 살림살이가 어려운 시기에는 가정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장아찌를 다양하게 담그는 일은 내가 장아찌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장아찌가 유일한 도시락 반찬이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에 먹었던 장아찌 맛을 낼 수는 없지만, 나만의 비법으로 레시피를 만들어서 지인과 공유하기도 한다. 밑반찬을 만드는 일 중에 비용도 적게 들면서 오래 저장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장아찌라는 생각이다. 장아찌를 담그는 일은 나에게는 어떠한 요리를 만들 때보다도 행복하다.
올해는 여느 때와 다르게 여러 가지 장아찌를 담갔다. 마늘, 양파, 톳, 셀러리, 깻잎, 양배추, 고사리, 방울양배추, 오이, 파프리카 등으로 넉넉하게 담가서 지인과 나누며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서로가 불꽃 튀게 나누다 보면 모든 상념에서 벗어나 정서적으로 편안해진다. 장아찌로 나누는 행복은 맛을 나누는 행복이 아니라 치유의 행복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밭에 가서 수확한 마늘종과 양파를 지인으로부터 받아와서 장아찌를 담갔다. 깊은 밤 홀로 주방에서 장아찌를 담그려고 재료를 준비하였다. 채소의 신선도와 크기 및 모양, 색깔, 간장소스의 비율 등을 고려하면서 메모를 하다 보면 요리연구가가 된듯하여 빙그레 웃음이 번지기도 한다. 장아찌를 만들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살아생전 알려주셨던 요리할 때의 마음가짐이 떠올라 정성이 더해진다. 지인들과 나눠 먹고 싶은 마음에 푸짐한 재료와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장아찌가 숙성되어 보관된 통을 열 때면 마음이 설렌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도는 장아찌는 내 삶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될 영원한 동반자이다. 우리 집에서는 장아찌가 필수식품이 되어 사계절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특히, 양파 장아찌는 알이 작은 양파를 골라 통으로 장아찌를 담근 후 잘 숙성시킨 장아찌를 4등분하여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리면 식탁 위에 작은 연꽃이 피어오른 듯하다.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과 모양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남편이 차려준 맛있는 저녁상에 다양한 장아찌가 올려졌다. 입맛 없는 봄날 ‘장아찌는 밥도둑’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맛있는 저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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