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2)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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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2)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0)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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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의 맨 오른쪽 벽은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0번째 벽이다. 이 벽에는 총 14장면의 이야기가 그려졌는데 다섯 단에 세 열로 나누어 배치되었다. 맨 위단의 오른쪽과 중앙에는 144-145번째 장면인 자리한다. 중국의 둔황 막고굴의 북위대부터 수당대까지 조성된 석굴에 많이 그려진 유마경변상도의 내용인 유마시질(維摩示疾)과 문수문질(文殊問疾)이다. 즉 재가불자로 불법의 깊은 경지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유마거사가 대승불교의 참뜻을 가르치기 위하여 방편으로 병이 들었는데, 이를 아신 부처님께서 제자와 보살들에게 유마거사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모두 과거에 유마거사로부터 잘못을 지적받고 질책을 받았다며 병문안 가기를 꺼린다. 결국 문수보살이 대표가 되어 병문안을 가게 되고 유마거사는 문수보살과의 담론을 통해 상좌부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진의를 설파한다. 유마시질은 유마거사가 병이 듦을 보이는 장면이고, 문수문질은 문수보살이 병문안하는 장면이다.     

유마거사가 병든 모습을 보이다(維摩示疾)

비야리성(지금의 바이샬리)에 유마힐(維摩詰)이라고 불리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말재주에 막힘이 없었고, 깊은 법문(法門)에 들어가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는데 능하고 방편에 통달하였다. 중생들이 바라는 바를 명료하게 알고, 그들이 지닌 근기가 예리하고 무딤을 잘 가릴 줄 알았다. 오래도록 불도를 닦아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서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였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 제자와 제석천, 범천과 사천왕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유마힐이 방편으로 질병이 있는 모습을 보이니 국왕, 대신, 장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갔는데, 유마힐은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몸의 병을 예로 들어 설법을 했다.
“이 몸은 무상한 것입니다. 강하지도 않고 힘도 없고 견고하지도 못하며 쉬이 썩으므로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고통으로 고뇌하는 까닭에 온갖 병이 모여듭니다. 이 몸은 마치 거품덩어리 같아서 집거나 만질 수도 없고, 물거품과 같아서 오래도록 지탱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몸은 넘쳐흐르는 물과 같으니 그것은 애욕의 갈증에 따라 생긴 것입니다. 이 몸은 허깨비와 같아서 전도망상으로 일어난 것이며, 꿈과 같이 허망한 견해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몸은 뜬 구름 같아서 잠깐 사이에 변하고 사라지며, 번갯불 같아서 순간순간 한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몸을 근심스러워하고 꺼려야 하며, 마땅히 부처님의 몸처럼 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한 모습, 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되며, 보시하고 계를 잘 지키며, 잘 참고 마음을 온화하게 갖고, 힘써 수행해 정진하고, 선정으로 삼매에 들고, 많은 가르침을 듣고, 지혜를 닦아야 이루어집니다. 청정한 법으로부터 여래의 몸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의 병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와 같이 유마힐은 문병 온 모든 이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알맞은 설법을 하여 많은 사람에게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 이야기는 『승만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재가주의를 강조하는 경인 『유마힐소설경』, 줄여서 『유마경』이라 불리는 대승경전의 14품 중 제2 방편품에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읽힌 경전은 405년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이 대표적이며, 삼국시대에 활동한 원효나 경흥이 이 경전을 해석한 책이 전할 정도로 널리 읽혔다. 제2품인 방편품은 병을 방편으로 삼아 병문안을 오는 이들에게 신체는 무상하고 약한 것이니 병을 끊기 위해서는 보리심을 얻어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3 제자품과 제4 보살품은 부처님께서 십대 제자와 미륵보살 등에게 문병을 가라고 권하나 이들은 모두 과거 유마거사에게 훈계를 받았던 경험을 말하며 문병가기를 사양한다. 결국 문수사리보살이 가게 되고, 문수보살이 병문안 가서 설법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5 문질품이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문병하다(文殊問疾)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유마힐을 찾아가니 유마힐은 문수보살이 많은 사람과 함께 문병을 오는 것을 알고 신력으로 방을 텅 비우고 오직 침상 하나만 놓아두고 거기에 누워 있었다. 이에 문수보살이 물었다.
“거사는 어찌 병을 참고 치료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걱정하시며 문병하라 저를 보내셨는데, 병이 무엇 때문에 생겼으며, 생긴 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하니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요?”
이에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어리석음과 탐심으로부터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중생의 병이 사라진다면 그 때 나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윤회에 들었으니,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게 되고, 만약 중생이 병에서 벗어난다면 보살도 병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보살의 병은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이후에 텅 빈 방을 방편으로 공(空)에 대해, 그리고 해탈과 병든 보살을 위로하는 방법, 병에서 벗어나는 법 등의 문답을 통해 보살행을 강조한다.
이후 제8 불도품을 거쳐 제9 입불이법문품에 이르면 대화가 심오의 극치에 달해 유마거사의 침묵의 대답으로 절정을 이룬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마주 앉아 문답을 나누는 장면은 불교 미술에서도 즐겨 표현되었다. 낙양이나 장안 같은 옛 도시의 사원에는 물론 둔황의 북위 대부터 수당대에 만들어진 석굴에는 많은 유마경변상도가 그려졌다. 당나라 초기에 그려진 335굴(사진 1) 북벽에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마주 보고, 문수보살 주변에 보살, 나한, 국왕과 귀족들의 모습을, 부채를 들고 앉은 유마거사 주변에는 각국에서 온 왕자와 사신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그 중 머리에 두 개의 깃털이 묘사된 조우관을 쓴 인물은 고구려나 신라 사신으로 알려졌다. 위에는 유마경의 여러 품에서 언급된 내용을 표현하였다.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모습은 석굴암에서도 볼 수 있다.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더불어 본존불의 협시로 서있고, 유마거사(사진 2)는 석굴 위쪽에 만들어진 10개의 감실 중 한 곳에  앉아 입불이법문품에서 나눈 침묵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각원사 벽화(사진 3)와 석씨원류 판화(사진 4)는 주변에 다양한 인물을 표현한 둔황석굴의 유마경변상도와 달리 문수보살과 유마거사 중심으로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화면의 크기 때문이다. 
내 아이디가 advaya이다. 30년 전 유마경 입불이법문편을 읽다가 불이(不二)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advaya를 접하고 그것을 아이디로 삼았는데, 가끔 스님이나 요가선생님께 보낸 잘못 온 메일이 내게 오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친절한 답신을 보내드린다.

(사진 1) 당나라 초기에 그려진 둔황 335굴 북벽의 유마경변상도
(사진 1) 당나라 초기에 그려진 둔황 335굴 북벽의 유마경변상도
(사진 2) 석굴암 감실의 유마거사상
(사진 2) 석굴암 감실의 유마거사상
(사진 3) 각원사 서쪽 10번째 벽 상단의 문수문질 벽화
(사진 3) 각원사 서쪽 10번째 벽 상단의 문수문질 벽화
중국불교유적순례 - (사진 4) 석씨원류 유마시질 판화
중국불교유적순례 - (사진 4) 석씨원류 유마시질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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