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사념처 수행의 시작 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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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사념처 수행의 시작 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6.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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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5월 초부터 대략 20여 회에 걸쳐 진용스님께서 (사)21세기불교포럼에서 월 1회 정기적으로 ‘37보리분법’이라는 주제로 법문하신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내 의견을 내 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 그 인간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즉 나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겨야지, 이겨야지’하는 사람은 나만의 사람입니다. 이런 나를 차분히 살펴보면 인간의 때가 묻은 부끄러운 자화상이 명확히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런 더러운 때가 묻은 나를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깨달음으로 향한 걸음마의 시작입니다. 
“나를 버리고 인간성을 초월한다.”는 명구는 위빳사나가 말하고 있는 수행방법 그것입니다. 

위빳사나 수행법을 꼭 실천해보십시오. 위빳사나를 선전하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충분히 자신이 있으므로 다만 실천해보십시오! 라고만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속는 셈 치고 한번 경험해 보십시오.
위빳사나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생존해 계시던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부처님 시대와 현대의 우리로서는 정보량도 다르고 살아가는 속도도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기본적인 인간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에는 다만 여러 가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 가지 정보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결국 욕심이 더 생기고, 분노가 더 일어나고, 혼란스럽게 되고, 그 정도이겠지요. 
정보가 적으면 욕심도 적고, 분노도 적고, 혼란도 적습니다. 지금은 고속열차가 있으므로 그것을 타고 당장이라도 서울에 가볼 수 있지만, 고속열차가 없다면 서울에 가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서울에 가든, 가까운 김해에 가든, 어느 장소로 간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똑같습니다. 우리는 결국 가는 장소가 멀든, 먼 곳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든, 옛날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인도에서는 샤워하지만 한국에서는 목욕을 하므로, 한국에서는 한국풍의 위빳사나 목욕법을 한다는 것, 단지 그것뿐입니다. 수행의 준거는 『맛지마 니꺄야(중부)』의 「사념처경(四念處經)」(M10)에 있는 대로입니다.


□ 일상생활 속에서의 위빳사나 수행법 

그러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띠를 실천하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집중적으로 끊어짐 없이 상세히 사띠를 실천하는 것은 무리일는지 모릅니다. 익숙해지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위빳사나 실천은 먼저 자신이 혼자가 되는 시간을 체크하십시오. 사람에 따라서 혼자가 되는 시간이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방을 청소하고 있을 때 30분 정도 혼자가 된다면 그 30분은 위빳사나 실천을 하도록 정합니다. 청소기로 청소를 한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동작을 순서대로 명칭 붙이면서 사띠하도록 하십시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는 명칭을 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사띠가 가능해지면 곧 대상과 일체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훈련된 단계로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명칭을 붙이며 대상과 일치시키는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명칭으로 확인한다고 하는 것은 도망가려고 하는 마음을 사띠로 묶고, 또 도망가려 하면 또 묶고, 또 도망하려 하면 또 묶는다고 하는 작업입니다. 명칭을 자주 붙이면 묶는 횟수가 많아져서 어떻게든 마음을 묶는 상태가 됩니다. 이른바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집중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청소하고 있는 상태를 예로 들어 사띠를 실험해 봅시다.
“청소기를 쥠→코드를 잡아 뺌→콘센트를 찾음→콘센트가 보임→콘센트에 코드 끝을 끼움→스위치를 넣음→소리 들림→청소를 시작함→오른쪽 끝부터 시작함→청소기를 밈→청소기를 당김→밀고, 멈추고, 당기고….” 라고 명칭 붙여 사띠로 청소를 합니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실험해 보십시오. 30분으로 1년간 얻지 못하는 엄청난 집중력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명칭을 붙이면 동작이 늦어져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 결과로서 구석에서 구석까지 실로 꼼꼼히 청소하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 30분이라도 자신의 시간이 있다면 이렇게 해서 위빳사나 수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이면 ‘보임’, 책이 모으면 ‘모음’,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면 ‘정리함’이라고 사띠하면서 정리해 주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주십시오. 

일부러 ‘불교를 실천한다, 수행한다.’하며 특별한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사띠하면서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도, 수행도, 양쪽 다 할 수 있게 되며 엄청난 집중력도 생기는 등 좋은 일뿐입니다. 
청소를 예로 든 것뿐이고 세탁도, 요리도, 운전도 그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띠 수행을 즐겁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즐겁게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로 무언가 즐거워지는 명칭을 사용하여서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소꿉놀이하듯이 즐겨 주길 바랍니다. 
명칭의 선택 여하에 따라 즐거움에 상당한 차이가 생기므로 가능한 한 재미있는 명칭을 골라 주십시오. TV나 라디오 방송이 재미있으면 즐겁습니다. 싫다고 생각하면서 수행을 해봐야 효과는 별로 없고 수행은 진척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승부의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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