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2) -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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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2) - 설날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7.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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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1771년 1월 1일 맑음
장선비(장한철을 이름, 앞으로는 장선비라 표현할 것임) 일행이 제주를 떠나(12월 25일 조천항 출항 관탈섬을 지나 노화도(소안도 서쪽)에 정착 못 하고 외연도(금산도 부근)를 바라보며 26일 흑산도 근방에서 유구(오키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라산이 보이고 밤이 되며 한라산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물이 없어 눈 서리 녹여 죽을 쑤어 먹는 일이 생긴다. 27일 노인성 얘기하다 28일 작은 섬(호산도)에 다다르고 29일 호산도에서 귤을 발견, 30일 쌍 전복을 흥정하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린다(최부의 표류지도는 상당히 세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는데 장한철 표류지도는 아직 확정할 만한 수준의 지도는 마련하고 있지 않다. 애월문학회·진선○기자가 표류지 따라 탐방한 기록은 있다. 전남대, 2019, 김미○, 표해록으로 본 19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에게서도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노화도에 정박 못 하고 왜 표류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원래 큰 배는 닻고리가 세 가닥이어야 안심하게 정박할 수 있는데 장선비가 탄 배는 어쩐 일인지 닻 고리가 한 가닥이어서 표류하게 된다.

풍랑과 태풍과 해일과 바람과 싸우며 표착한 곳이 호산도였으니 호산도는 장선비 일행에게는 신비의 땅으로 전복 감귤을 보며 제주 향수를 느끼며 안위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기록에 의하면 5일간 표착 했다).
혹여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해적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산짐승이 달려든다면……. 이름 모를 병이라도 걸린다면…….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뱃사람들이라 뜬눈이지만 잠을 청한다. 

멀리서 밝고 붉은빛이 새어 나오자 거무스름했던 수평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설날이다. 맑은 날이다. 그러나 이역만리 멀고 먼 곳에서 맞이한 설날은 슬펐다.
장선비 일행은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어 마주 보며 울었다.
“자, 윷놀이 한판 벌여볼까?”
장선비는 여러 사람에게 명하여 윷을 던지며 놀이를 하게 했다. 
“팀을 갈라야 할 텐데……. 옳거니 제주 상인이 한팀, 그 외 사람들을 한팀으로 하고 심판은 사공이 하게나.”
장선비는 혹여 일어날지 모를 싸움에 대비하여 미리 윷놀이 팀을 구성하여 주었다.
심판(윷놀이서 말을 놓아는 주는 사람)은 사공(이창성)이 제주상인 강재유(정병욱 표해록에는 강방유), 김재완(정병욱 표해록에는 김방완), 양윤하, 이도원, 박항원, 김복삼, 이득춘, 고복태, 양윤득, 이우성, 이춘삼, 이대재(정병욱 표해록에는 이대방), 김필재(정병욱 표해록에는 김필만), 김순태, 장원기를 ‘동東’ 팀 15명, 육지상인(백사렴, 김칠백) 과 선부(유창도, 김순기, 김차걸, 고득성, 정보성(정병욱 표해록에는 정보래), 유일춘, 이성빈, 김수기, 이복일을 ‘서西’팀 11명으로 구성하였다(29명 중 26명은 선수, 1명은 심판, 2명은 팀장).

출항 당시 명단, 정병욱 표해록과 김지홍 표해록이 달라 김지홍에게 문의하여 여기서는 김지홍의 출항 명단을 기준 삼았다
출항 당시 명단, 정병욱 표해록과 김지홍 표해록이 달라 김지홍에게 문의하여 여기서는 김지홍의 출항 명단을 기준 삼았다

“동팀 팀장은 김서일, 서팀 팀장은 나(장한철)가 맡겠소.”
생사를 들락거리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뱃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심하게 그냥 윷놀이할 수는 없지. 자 어때? 윷가락 한번 던져 질(이기다의 반대) 때마다 옷가지 하나씩 벗는 게?”
“이길 때는요?”
“축하 주酒 한잔이오.”

심판 이창성이 설날인데 물도 소금도 다 떨어져 떡국은 못 먹을지언정 술판이야 벌여야 할 명분을 만들고 있다. 사실 상인들은 남몰래 숨겨 놓은 술병이 있음을 심판은 이미 눈치챈지라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생사 가름길에서 장선비는 옛 버릇, 기생집 드나들던 때 했던 옷 벗기기 게임을 눈에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찬성이오. 좋습니다.”
아뿔싸 뱃사람들 하는 말투 보게나? 장선비 말에 맞장구치는구나.
장선비 일행 29명은 한바탕 윷놀이에 젖었다.
“자, 한판 승부요. 기왕지사 윷점도 보시구려”

도도도: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 행복한 일이 생김, 개개개: 희망과 의지가 잘 이루어짐, 걸걸걸: 뜻한 바가 드디어 결실을 볼 징조, 모모모: 동생을 볼 징조, 윷윷윷: 윷점에는 없다. 빠구도도도: 술도 없고 음식도 없고 잠도 없다. 가장 나쁜 점꽤이다. 온갖 제물을 뺏긴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다. 등 

기분을 막 내려는 참인데 한참 흥이 돋아 있는데 삼판양승이 아니라 한판 승부를 겨루라네?
“알겠소이다. 선비님은 잠시 쉬시지요.”
일행은 장선비를 정중히 모시고는 윷놀이 게임을 이어가는데?
“자, 이제부터 단체 게임이다. 돌 넉점 먼저 나오는 팀이 이기는 거로 하지?”
“이런 에구 맹꽁이 그건 지금껏 해온 심심풀이고. 뭐 빽(Back) 도라는 걸 하면 어때?”
“빽 도?”
“빠꾸(Bakku)도야. 마지막 도면 출出 하는데 빠꾸도가 나오면 완전 되돌아가 처음 도가 되는 게지.”
“뭐라구?”
일행이 윷놀이하는 동안 장선비 눈만 멀똥멀똥 거리는 구나!
한참 만에 배 선반은 조용해 졌다. 
게임에서 진 팀은 옷을 벗고 이긴 팀은 술도 마셨겠다 기분을 내려 머리를 높게 하여 진 사람 배에 발을 걸치니 이를 바라보는 일행은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장선비는 눈을 붙이려다 혼자 있기가 심심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뱃사람들이 있는 간판에 가 있다. 저 멀리 뭔가 보이듯 뱃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바라본다.
“뭐야? 배가 보이는 것 같지?”
누군가가 소리쳤다.
옷을 벗고 있던 뱃사람들이며 거나하게 술기운에 기분 내던 뱃사람들이 모두 한곳에 시선을 돌린다.
“뱁니다. 배가 보여요.”
뱃사람들의 환호성에 장선비는 점잖게 말했다.
“아마 상선일게요.”
“상선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는데요.”
“해적선만 아니면 좋아요.”
장선비는 작은 섬(호산도)에서 한껏 선비 폼을 잡는다.
“노나라(주나라와 가까운 국가, ‘공자’의 출신지) 부용국(큰 나라에 딸려서 그 지배를 받는 작은 나라)이었던 등(작은 나라 이름)은 땅이 사방 50리의 작은 나라였지만, 오히려 임금과 신하와 위아래에 온갖 관리와 왕실 창고 등이 있었소. 이 섬은 비록 작아서 둘레가 40여 리이지만, 산과 바다에서 나는 물건이 풍부해 부족함이 없이 풍족히 삶을 살 수 있고, 땅이 기름져 농사를 지우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음이라! 그러니 물고기를 잡는 어촌들이 마땅히 있어야 하겠지만, 대강 말해 어찌 사람들이 이 섬에 살지 않고 무인도로 만들었겠소? 내 짐작으로는, 바다의 도적들이 이곳에 자주 출현해, 사람들이 이 섬에 붙어살지 못했을 것이 아니겠소?”

공자(551~479)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학자이다. 육경을 정리하고 인, 예, 효제, 충서 등 윤리 도덕을 가르쳤다. 유교를 시작한 조상으로 일컬어지며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 일곱 권이 있다.


이에 사공이 대답했다.
“바야흐로 바다 안의 모든 땅이 편안하므로, 산속을 다니고 바닷가에서 잠을 자더라도 도적이 나타나리란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유독 이곳에만 해적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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