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사념처 수행의 시작 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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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사념처 수행의 시작 Ⅷ】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7.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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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5월 초부터 대략 20여 회에 걸쳐 진용스님께서 (사)21세기불교포럼에서 월 1회 정기적으로 ‘37보리분법’이라는 주제로 법문하신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 하면 6시간 잘 것을 5시간만 자고 나머지 한 시간은 위빳사나 수행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 12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5시에 일어나 주십시오. 자명종이라도 이용해서 아침 5시가 되면 얼른 일어납니다.
얼른 일어나서 다리를 꼬고 눈은 뜨든 감든 좋을 대로 하여 자세를 바르게 하고 등을 반드시 곧게 펴서 마음과 몸을 가다듬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느긋이 합니다. 이런 모든 동작을 사띠하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배의 호흡을 관찰하도록 하십시오. 그때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느긋하게 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체에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에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필요한 휴식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자는 것이 아닙니다. 잔다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잤더니 오히려 피곤해졌다는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잠자도 또 잠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눈을 뜨면 하품을 하거나 몸을 여기저기 뻗으며 피로를 풀려고 하고 있겠지요. 
그러므로 아침은 여느 때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한 시간을 심신을 가라앉히는 시간, 마음을 통일시키는 시간으로 정해 주십시오. 
한 시간이 길다고 생각한다면 처음에는 30분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밤에 자기 전에도 같은 식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그냥 누워서 자기만 할 때는 좀처럼 곧바로 숙면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곧바로 숙면할 수 있으면 한 시간을 자도, 2시간을 자도 훌륭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나서 자면 곧 죽은 것 같은 느낌으로 잘 수 있어서 정말로 피로가 잘 풀립니다. 
자신이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자는 것이 최고입니다. 잠들기 전에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면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호흡을 관찰하며, 정말로 아주 졸릴 때까지 수행을 하고 나서 ‘지금부터 잔다.’라고 사띠하며 자면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이 몸에 밴 사람은 아무리 신체가 피로해도 얼른 사띠를 하는 것만으로 심신을 확 풀어 줄 수 있습니다. 
마치 스위치를 넣으면 전기가 들어오듯이 당장 마음을 가라앉혀 피로를 풀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몸이 피로해서 천근만근이 되었어도 어딘가 앉아서 조금이라도 수행을 하면 확 피로가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은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마치 기적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란 것은 일부러 기적을 행한다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지 않아도 자신이 간단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기적을 만드는 쪽이 훨씬 즐겁겠지요. 꼭 시험해 보십시오.

■    싫은 것을 순식간에 없애는 수행 응용법 

끝으로, 하나 더 설명하고, 위빳사나 기본 수행법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무언가 불유쾌한 경험을 하는 일이 있지요? 싫은 일, 사정이 좋지 않은 일, 의롭지 못한 일이 여러 가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회사의 상사가 까다로운 사람으로 잔소리만 해댄다든가 혹은 집에 있어도 마음이 맞지 않는 이웃 여자가 갑자기 와서 듣고 싶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소문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럴 때는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날 것입니다. 
이 순간이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내 뜻에 맞지 않는다, 싫다, 불쾌하다고 생각하여 화를 내고 말기 때문에 참담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얼른 사띠를 하십시오. 내 속에 분노가 생기면 ‘분노’, ‘분노’, 싫어지면 ‘싫어함’, ‘싫어함’이라고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사띠하는 것입니다. 
싫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비참해진다고 느낄 때, 감정적으로 되어 버리면 반드시 지고 맙니다. 화를 내면 집니다. 
그 순간에 얼른 사띠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주십시오. 억지로 분노나 불쾌감을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싫은 기분을 그대로 사띠할 뿐입니다. 
그때 어떤 명칭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귀찮음’, ‘귀찮음’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리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순간적 감정에 사로잡혀 그것을 알고 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 명칭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나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귀찮아져 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봅니다. 조금 자신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보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위빳사나 수행법을 행하십시오. 훌륭한 효과가 있을 겁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상 수행법도 진지하게 하면 집중 수행법과 같은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집중수행법은 일주일간 진지하게 계속하면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일상 수행법으로는 한 달 정도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정말로 한 달간 이 수행법을 확실히 실천한다면 인간이 변화합니다. 다음 달이면 여러분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 꼭 시작해 주십시오. 그렇게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전을 보라든가, 이런 복장을 하라든가, 이것을 드시오.’라든가, ‘종교적 의식을 하시오.’라든가 하는 것은 일절 말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것뿐입니다. 바빠서 수행할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사띠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띠만이 모든 것에 승리하는 길입니다.
단지 멍하니 사는 사람은 정말로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사띠가 없는 사람은 죽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 있는 상태에서 탈출하여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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