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22) - 쉬고 또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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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22) - 쉬고 또 쉬어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8.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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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아란야 과원에 목백일홍木百日紅이 피어났습니다. 백일홍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무궁화, 자귀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3대 꽃나무 중 하나입니다.
지난 2월 지인으로부터 묘목 다섯 그루를 구해다가 심었는데 용케도 다 활착해서 그 중 한 그루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부처 꽃과에 속해서 그런지 전국의 유명 사찰에는 부처님 전에 꽃 공양을 올리듯 앞 다퉈 배롱나무 거목으로 도량을 장엄합니다. 
30여 년 전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함께 밀양 표충사를 간 적이 있는데, 천년 고찰의 뜰 안에 붉은 배롱나무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서 언젠가는 내 뜰 안에도 배롱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실을 맺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니 행동이 굼뜨긴 해도 의지는 굳건했음이라.  

꽃 한 송이가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있는 게 아니라 어제 핀 꽃 한 송이가 떨어지고 오늘 꽃 한 송이 피어나 100일 동안 피고 지며 채움과 비움 또는 생멸을 반복하면서 설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세속의 명리에 찌든 나그네는 오뉴월 염천炎天에 더 뜨겁게 피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헐떡이며 쉼 없이 달려온 지나온 삶을 반추해 봅니다.

우리 인간들은 욕계 세상(kāma-loka)에 살고 있습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네 가지의 악도, 인간, 여섯 가지 욕계 천상(六欲天)의 11가지 욕계 세상에는 이에 상응하여 54가지의 마음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욕계 마음은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 귀로 인식되는 소리, 코로 인식되는 냄새, 혀로 인식되는 맛,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 등을 원하고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 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욕망에 이끌려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 감각적 욕망은 생존의 본능이기도 하나 과욕過慾은 해로운 마음의 뿌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상징인 물질의 풍요함을 추구하고 그 즐거운 느낌에 매료된다는 것은 우리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면서 출리出離를 발심한 수행자가 내려놓아야 할 짐이기도 합니다.
여름휴가철의 산사는 일거리가 늘고 바빠집니다. 전국의 147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갤럽이 시행한 2021년 만족도 조사에서 국민의 템플스테이 참가 동기가 ‘휴식과 일상의 재충전’으로 가장 높은 응답(63%)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템플스테이가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몸과 마음에 쉼을 제공하는 휴식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특히 코로나19의 극성기인 지난 2년간 MZ세대의 참가율이 예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뉴스에 비춰 보아도 템플스테이는 1,700여 년의 한국불교 역사에서 불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새로운 소통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수행공간인 사찰에 템플스테이를 시작한 선구자는 
해남 미황사의 금강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의 산문집 《물 흐르고 꽃은 피네》에 실린 템플스테이 관련 글귀가 문득 떠오릅니다.
 “몇 해 전, ‘마음의 근육을 만들다’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에 미황사의 7박8일 명상 프로그램이 소개되었다. 방송이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특히 청년들이 많았다. 그들 중엔 정신질환으로 약물치료를 받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
이 글에서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무한경쟁과 욕망을 분출하는 사회 속에서 제자리를 못 잡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법합니다. 
최근 매스컴에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몸의 근육이 필요하듯 마음의 근육도 필요합니다. 마음의 근육 키우기 해법에 대해 명상, 요가, 독서, 음악 감상, 숲길 걷기 등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춤사위가 현란한 공연을 보거나 중독성이 강한 술과 마약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려고 애쓰나 이 또한 욕심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아침 20분 정도 명상의 힘으로 어제의 번뇌 망상을 비우며  여러 가지 해로운 마음의 소리들을 청소하고, 그 대신 자애의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누구나 평화와 행복을 원합니다. <마하 망갈라 경>(Sn2.4)에서 부처님께서는 금생의 행복 조건으로 자기 소질에 맞는 기술을 익혀서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불조의 가르침과 같이 일의 가치, 노동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쉼의 가치, 휴식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이야말로 행복의 척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몸을 쉬는 법을 잘 압니다. 그런데 마음 쉬는 법은 잘 모릅니다. 고요한 숲속에서 몸을 쉰다고 마음까지 편안해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도 마음은 불안정하고 마치 물에서 건져 마른 땅에 내던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꼭 길들지 않는 망아지와 같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호흡명상은 내 안의 들숨과 날숨을 오롯이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수행법으로서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탁월한 수련법 중 하나입니다. 불교의 명상은 ‘마음을 갈다, 마음을 계발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길들이는 방법, 마음을 쉬는 방법으로 호흡명상을 적극 권장하였습니다.
  
선정은 오온五蘊의 공空한 이치를 깨달은 성자들의 쉼터입니다. 사람과 법이 다 텅 비었으니 마음이 저절로 쉬어져 기뻐할 것도 없고 근심할 것도 없습니다. 쉰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방에서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를 일념으로 챙기는 것도 쉬는 것이고 염불하는 것도 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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