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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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길상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8.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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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의 무소유로 잘 알려진 길상사를 찾았다. ‘맑고 향기롭게’ 라고 쓰여있는 팻말이 다정하다. 길상사는 한 여인이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가을을 머금은 사찰은 오색단풍으로 풍성하게 영글어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원래는 사찰이 아니고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김영한이 운영하던 최고급 요정으로 1970~80여 년대 군사정권 시절 “요정정치”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3대 정치라고 불리는 대원각은 정, 재계 고위급 인사들과 재벌들이 비밀회동 장소였다. 법정스님이 머물던 방엔 아직도 영험한 기운이 맴돈다. 삼배를 올리고 나니 마음마저 숙연하다. 
  김영한은 백석을 흠모했다. 1937년 천재 시인 백석으로부터 김영한은 자야子夜라는 아명을 얻고 백석과의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백석이 함흥 영생 여고 재직 시절 교사의 송별연에 갔다가 첫눈에 반해 연인이 됐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오르지만, 백석의 집에서는 기생인 김영한과의 만남을 극구 반대했다.
  김영한과의 동거 중 강제로 백석을 김영한에게서 떼어놓을 심사로 부모가 정한 여인과 혼인을 올리지만 백석은 초례만 치룬 후 도망쳐 나와 자야 품으로 돌아온다.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떠나 같이 살자고 했지만 자야는 백석의 장래에 누가 될까 거절했다. 그러나 잠시라고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 버렸다. 그 후 3.8선이 그어지고 분단이 비극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란 시를 썼다.
자야는 나처럼 천한 여성을 한 시인이 사랑해서 한 줄 나타샤로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살겠다며 평생 백석을 기다렸다. 살아생전 일 년에 단 하루 밥을 먹지 않은 날은 백석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불심이 깊은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자신의 전 재산을 거부하였다. 1987년 1,000억 원대의 건물을 시주하여 절을 세워 달라고 간청하였다. 법정은 처음은 사양했지만,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길상사를 세웠고, 김영한은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얻게 된다.
  그녀는 말년에 기자들이 “1,000억의 전 재산을 기부하고도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천억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말을 남기며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절 뒤뜰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도 절안에 있다. 2010년 법정스님도 이곳에 입적했다. 극락전은 김영한의 영전를 모시고 있으며, 진영각에는 법정의 영정과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백석도 자야도 한줌 흙이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여인의 화염을 가두고 옥죄였던 돈도 명예도 다 부질없는 한 줌 구름이 되었다. 안타까운 숙명에 미완성으로 애절하게 끝난 사랑 이야기는 지금도 성북동 풍경소리를 타고 허공에 선율을 그리며 잔잔한 감회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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