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冲庵 金淨)의 『존자암 중수기(尊者庵 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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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冲庵 金淨)의 『존자암 중수기(尊者庵 重修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8.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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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온 모습은 뒤로 물러서서 그 외양을 쳐다보면 둥글둥글해서 높고 험준한 것 같지않고, 비탈이 비스듬히 져서 가파르고 높이 솟아난 것 같지 않다. 벌판 가운데 높이 우뚝 하게 선 산과 같아서 특별히 더 험난한 형상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 오르며 산 속에 들어가면 가파른 바위와 낭떠러지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길은 구불구불하고 깊은 골짜기가 있어 굴처럼 어둡다. 곤륜산의 구렁과 판동의 골짜기와 같아서 세속을 떠나 정경하고 높은 흥취가 많다. 항아리 같은 돌이 7~8인(仞)이나 되어 호랑이처럼 웅크린 모습을 하고 있고, 장대 같은 군더더기 전나무가 4~5파(把)되는데, 산처럼 뻗어 서 있다. 전단 향나무가 숲을 이루어 빽빽하게 자라고 있으며, 산의 정령과 골짜기의 산도깨비들이 대낮에도 나와 놀고 있다. 
바람이 휘 불어지나면 생황 퉁소 거문고 비파 소리가 온 곳에 울려 퍼지고, 구름이 자욱하게 몰려들면 무의비단과 수놓은 비단의 빛이 온 곳을 물들인다, 높은 곳은 나무들이 우뚝하니 높이 서 있어 마치 칼과 창이 묶어서 서 있는 듯하고 낮은 곳은 울퉁불퉁하여 가마솥과 책상이 내던져진 듯하였다. 산등성이와 봉우리는 뒤섞여 펼쳐졌는데 몇 번이나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고는 종국에는 돌아보며 합쳐진다. 구렁과 골짜기는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데, 바닥이 움푹 패여 내려와 그윽하니, 길기도 허며 또 황량하니, 좁기도 하다. 높고 낮은 산들은 뒤섞여 흐트러져 있고, 깊고 얕은 골짜기는 아득히 미혹스러우니 하늘의 해를 가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다. 
이상이 온 산의 동서남북의 대강인데, 오랜 옛적부터 작은 천태산이라 전해 온 것도 참으로 거짓이 아니라 하겠다. 중국 사람들이 항상 빌면서 말하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몸소 금강산을 보고 싶다” 고 한 것은 그 산이 높고 크며 기이하고 뛰어나 신령스럽다는 것이 천하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저 산에 암자와 사우(社宇)가 많은 것이 마치 물고기 몸에 비늘이 붙어있는 것과 같다. 무릇 천하에 절 없는 명산이 없는데, 한라산의 은밀한 지경과 신비한 영역은 금강산보다 더욱 많이 있으며, 기이하고 험준한 곳 역시 몇 배나 된다. 
존자암이 암자로 된 것은 삼성이 처음 일어날 때에 비로소 만들었는데, 삼읍이 정립된 후에 까지 오래도록 전해졌다. 또 암자가 자리잡은 형세는 풍수지리에서에 많이 들어맞는다. 그 터를 말한다면 주봉은 널리 덮여 가득 차고 둥글게 올라가 있다. 험준하고 우뚝 서 있는데, 점점 낮아져 마치 봉황새가 날개를 펼쳐 날다가 내려앉아 웅크리고는 사랑스럽게 그 새끼를 보는 것 같다. 이는 현무의 기이다. 찬샘은 근원이 깊고 옥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맑고 향기로운 물줄기는 이른바 ‘달의 덕(月德)이 그 방위에 있다.’고 하겠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아니한다. 이는 주작의 이(異)이다. 비스듬히 이어지며 구불구불한 모양은 허리에 마치 왼쪽 팡리 그 묶인 끈을 풀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이는 청룡의 승(勝)이다. 꼬리를 끌며 다시 가는 모양은 머리를 마치 오른 손이 그 무릎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이는 백호의 미(美)이다. 이상은 땅의 이치를 갖춘 것이다. 그 지경을 말한다면, 기암이며, 괴석들이 새기고 쪼고 갈고 깎은 듯 곳곳에 우뚝 솟아 있다. 떨어져 서 있기도 하고 모여 서 있기도 하다. 기울어 서 있기도 하고, 나란히 서 있기도 하다. 마치 오르면서 말하듯 둘이 마주 서서 말하는 듯하고 서로 돌아보며 따르는 듯 이어지니 이는 조물주가 정성을 다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나무며, 기이한 나무들이 푸르게 물들어 울창하다. 서로 붙들어 있기도 하고, 등 돌려 있기도 하며, 옆으로 누워 있기도 하며 쓰러져 있기도 하다. 누가 더 자랐느냐고 다투는 것 같고 누가 잘났느냐고 경쟁하는 것 같고 어지러이 일어나 춤추고 절하 듯 줄지어 있으니, 이는 토지신이 힘을 다하여 심은 것이 아니겠는가. 신선과 응진이 늘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머무는 것 같으며, 이상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이 언제나 그 속에서 날아다니고 걸어 다닌다. 이상은 경개를 갖춘 것이다. 연이는 산줄기와 둥근 산이 겹겹이 싸안으며 함께 일어나고 붉은 구름과 푸른 안개가 드리우더니 맑은 태양을 뿜어내면 백 리 밖에서도 멀지 않아 반걸음에 내딛는다. 푸른 바다와 흰 물결이 쪽빛을 주무르며 눈을 미쳐내고 붉은 봉새와 푸른 봉새가 하늘을 덮고 날아오르면 한 경계 안에서도 가깝지 않아 세 때의 밥을 먹는다. 비가 개이고 구름이 겉히는 때를 당하면 하늘을 새로운 거울 같고 아지랑이는 바람에 쏠리며 작은 티끌은 다 없어진다. 
만 리를 꿰들어 볼 수 있으니, 머나먼 바다에 떠 있는 나라〔제주〕가 바둑돌이 흩어진 것처럼 또렷하게 보인다. 반면 바람이 사납고 비가 쏟아질 때면 천지가 어두워져 조심스러우며 성낸 기세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으며, 혼돈된 온 세계가 거위 알 속에 있는 것처럼 어두컴컴하다. 이리하여 속 세의 시끄러움은 사라지고 세상 밖 신선의 현묘함이 온전하게 되니, 이것이 열어구(列禦寇) 곧 열자란 책에 있는 원교의 산이요, 만천 동방삭의 기에 있는 영주 땅이다. 
음력 4월에 길일을 택하여 삼읍 수령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 이 암자에서 목욕 재계하고 제사를 지내게 하는데 이를 국성재라고 하였다. 지금은 그것을 폐지한지 겨우 8~9년이 된다.
(출처 : 김상헌, 홍기표 역, 『남사록』상(제주문화원,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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