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9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 작품 -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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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9회 신행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 작품 - “기다리는 마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0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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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 백 경 화(제주시 도남동)

크나큰 원력로 중생의 제도에 힘쓰셨던 봉려관 스님의 행적을 찾아서 힐링 체험을 하기 위해서 나와 도반님 보살님들께서 관음사에 도착하였다. 한마음에 기대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라산 기슭을 연이어 내려온 관음사 도량을 마주할 수 있었다. 관음사 한라산이란 팻말이 눈에 띄어 한 바퀴 둘러봤더니(관음사 부처님) 특히 현무암으로 만든 부처님 모습은 같지만 손모양이 어떤 의미를 말하듯 일주문을 들여다봤다. 포근하고 태양이 쏘듯이 트인 모습. 부처님이 큰 원력을 가지고 중생들의 마음을 보듬듯 아련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다.
관음사를 올레길 처럼 천천히 봉려관 스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조용히 한발자국씩 걸어갔다. 사천문을 향해 가는 길에 양옆에 부처님이 계셔서 힘든 마음을 한 마음씩 내려놓으며 걸었다. 사천왕문을 통과할 쯤 4.3 사건 때 토벌군과 유격대가 치명적으로 서로와 서로의 타격을 받은 상처를 현대에 와서 치유의 상처로 남았다는 사실에 한순간의 아픔의 가슴을 토닥토닥 가슴을 쓸어내림으로 두 손 모아 합장을 했다.
바로 기대했던 곳, 봉려관 스님이 기도 정진했던 해월굴이 있었다. 그 시절 최초로 제주에 불교를 심어주고 역사에 남기는 일들을 억척같이 그리고 온화하게 제주도민들에게 안락처와 같은 의인. 괴로움과 슬픔을 내려놓게 해주시고 병을 낫게 해주셨던 대단한 스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게끔 했다.
봉려관 스님께서 행적비가 있었다.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 태어나 34세이던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을 인연으로 출가해서 해월굴에서 6년 동안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제주 불교를 중흥하자 서원 1907년 12월 전남 대흥사를 찾아 믿기 어려운 기적을 행함으로서 청봉화상을 목소리, 말, 행동 계사로 유장스님을 은사로 비구니 계를 수계, 이듬해 1월 제주도에 내려와 1908년 관음사를 창건, 개산조가 되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 스님을 초청, 정범홍포에 매진하였다. 법정사 무오항일 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 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36년 세수 71세, 법랍 37세로 입적하시니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한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왕조 역불 정책으로 인한 200여 년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 제주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 불교 중흥조요 선각자요 애국자라고 비석같이 봉려관 스님에 대해 간략하게 쓴 글이다. 해월굴에서 3년간 기도 정진했던 토굴의 느낌이 다가온 듯 했다. 관음사를 중창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생각에 봉려관 스님께서 기도 정진했던 해월굴에서 합장 기도했다. 얼마나 힘들고 입으로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들으면서 오로지 관세음보살 뜻을 중생들에게 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백만분의 일 정도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오도송 열반게도 눈에 띄이게 읽어 내렸다. 관음사에 삼성각은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시는 진각으로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 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을 불교에서 흡수하여 생긴 신앙형태이다. 한라산 중턱인데 산신각이 있고 칠성(별이 7개) 생명의 영원불멸, 독성이 있는 조용히 삼배하고 절하고 내려왔다. 옆에 관세음보살 상이 있었다. 자애와 자비의 상징이며 아미타불 화신으로 구제할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33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나신다.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입적 이후부터 미륵불이 나타날 때 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라 한다.
문수보살은 (중간에 세워짐) 문수사리의 별칭으로 형상은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오른손은 지혜의 검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 보련보살님은 부처님께 예배, 공양, 우러러 찬탄하고 공양하며 스스로 업장 참회하며 남의 공덕을 기뻐하고 설법을 주기를 청하고 부처님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 배우고 순응하며 모두 모든 것을 가지고 회향하는 부처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로 한 마음을 모아봤다. 조용하고 천천히.
내려오다 보면 연못이 조용히 명상하는 모습처럼 가만히 있는 모습도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찰순례를 돌아보고 웅진스님 지도하에 참선 시간에 현대 생활에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래서 나를 알아가는 참선 이 시간에 호흡법으로 명상하는 공부도 해봤다. 부처님은 본래의 나의 모습이고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고 깨어있는 시간은 곧 현실 같은 모습이니.
불생불명, 불구부정인 글귀가 나란 존재란 영원한 존재이다. 꿈에서 깨어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본래 나로 돌아간다. 쉽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어보게 되었다. 명상하는 동안 한순간에 여러 생각들이 들락날락하였지만 그냥 툭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명상체험을 잘해본 것 같다. 108배 절하면서 염주알 꿰기 체험도 난생처음 해본 결과 나에게 참회와 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체험이 신기하 기도하고 뜻깊었던 체험이었다.
두 번째 봉려관스님 해적을 찾아 떠나는 힐링체험은 원만사에 도착할 적에 한라산 뒷자락에 산길따라 광대코지(회오리바람이 억세고 험난한 장소)에 봉려관 스님께서 중창했던 곳. 크나큰 원력으로 수행하려는 부처님이 보였을 것이다. 산길따라 올라가다보니 암반위에 위쪽으로는 동자스님 같이 천진쓰러운 모습, 밑쪽으로는 점잖으신 부처님 상 같은 모습으로 보살님들을 반기는 것 같았다.
봉려관 스님께서 이런 장소로 걸어다니면서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했다는 사실이 크나큰 마음으로 다가왔다.
원만사에서 명상체험, 108배 염주꿰기, 참회지 소원지 쓰고 길가에 풀위에 앉아 옛날 초등학교때 소풍같은 느낌으로 나를 알아가는 봉려관스님 행적을 찾아 떠나는 체험을 두번째로 마치고 다음 세번째를 기대해본다.
명상체험을 하면서 나는 솔직히 소소한 일에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그런 표정을 지어서는 안될 것 같은 허위식이라 할까 엄숙주의가 되어 있었다. 쭈-욱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다. 하지만 명상체험을 해보면서 지인들에게도 행복하다는 표시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소중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내 본성에 정직하게 사는 거라고 믿고 싶기도 하고 세상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고 자연스레 이 나이기를 이제는 조금씩 살아가려고 한다.
조그마한 일, 작은 일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내 본성 앞에 정직한 삶을 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동안 나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행복도 뒷전에 두고 살아오면서 괴롭고 힘들게 아파하는 내가 나를 미워하면서 지낸 지난 날의 후회와 용서로 내려놓기로 했다. 명상으로 나를 찾아다니는 표현의 의미는 과연 어떻게 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에게 힘내자~ 화이팅 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진다. 지금은 나이 든만큼 생각만큼은 슬프지 않으려고 한다. 앞날에 대한 꿈,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체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고요하게 나를 찾는 명상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참회지를 쓰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고)(집)의 관계는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갈애와 망집으로 미혹되게하고 괴로움을 겪게 만드는 인과관계, 즉 유전 연기이며 (멸)(도)2제 관계는 괴로움이 소멸된 이상의 경지인 열반의 증득이라는 결과와 열반 불교 수행하는 마음이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인과관계, 환멸연기라고 하듯이 지금은 내가 행하고 생각하는 주위에 있는 것들이 내가 전생에 지어온 인연이거늘 항상 내가 잘못이 아니고 다른 타인의 잘못이라고 연거푸 화를 내며 상대방에게 비방하면서 욕도 했으며 나의 인연법이라는 걸 알고 차림을 나에게 묻고 다시 질문 해봤을 때 나의 잘잘못이었다는 사실이 참회기도 하듯이 한줄 두 줄 써내려갔다. 참회지를 쓰고 어딘가 모르게 살며시 조용히 내려놓은 마음이 내려앉은 마음 이라할까?
나에게서 계속적으로 쌓여지는 남을 원망하는 마음들이....이제는 참회의 명상으로 나를 만나기를 기원한다. 
10년전에 아주 평범한 아주 평범한 가정인 우리가족들은 남편의 교통사고 충격으로 큰 수술을 받게 되어 49재를 해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먹을 정도로 상황이 아주 안 좋았다. 자식들은 1남 2녀 모두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에 가장이 이런 일이 닥치니까 처음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렇게도 아픔을 주는지 원망하고 또 원망으로 나를 자책 했다. 알고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운명적으로 나 자신이 나와 만남인데 지금 존재 값어치도 없다는 나에게의 불행적인 생각만 했던 것이였다. 그리고 닥치는데로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과의 대화할 시간도 없거니와 따스한 말 한마디를 못하면서 일만하는 엄마가 되어있었고 좋은 엄마가 되어가고 파도 이런 시기에 살아갈려면 훈계적인 엄마가 되어서 지금와서는 내가 힘든만큼 아이들도 나못지않게 힘들고 있다고 친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알고보니 내가 알아차림을 해야 되는데 엄마도 힘들다 그런 메시지만 이야기 했던 것이 마음의 아프다. 그 옛날 우리 친정어머니는 우리를 키우면서 힘들고 모진세월을 견디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하고 참회기도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뜻대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래야 되냐는 식으로 마음속에 화를 풀지 못하면 불면증이 왔고 우울증세가 생기면서 이러면 안되겠다 하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노래로 음성공양을 해보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도 없는데 봉사를 한다하지만 나는 나에게 뭐라고 해도 신경이 안쓰였다는 건 아니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마음에선 고운소리 맑은소리가 나와야하는데 중압감마저 생기긴 했지만 마음이 위축되고 움츠리기만 하는 나의 맘조차 조절이 잘 안되었다. 연습 또 연습이라던데 그래도 최선을 다할려고 했다. 아! 사람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얼마든지 돈.권력.명예 그리고 자존심까지 이길 수 있지만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겐 관대하기도 하고 잘난 척, 있는 척 나 자신을 앞서야 나를 이기는 것 마냥 목에 힘을 주고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함을 최대의 약자인 것을 아직도 욕심에 찬 집착으로 생각행동을 내려놓지 못한 어리석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아픈 집착으로 내가 나에게 컨트롤하지 못함을 명상으로 내려 놓을려고 노력중이다. 생각을 투~욱 놔버리는걸 해보기로 했다. 숙달된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힘들지만 잠시나마 조금씩 감을 잡을 수가 있다. 남편도 병상에서 나와 시골에서 시댁농사일을 돕고 있으며 자식들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주어서 감사하고 감사한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까지 오게끔 시댁 친정 그리고 말없이 힘이 되어준 친구 지인들 언제나 빚을 갚아야하는 분들이시다. 힘들 때 같이 힘들게 있어준 자식들이 있었음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해월당 봉려관 스님께서 지혜와 중생의 고통을 참회하고 다른 사람들이 공덕을 기뻐하시는 부처님말씀처럼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금이대로의 감사함을 나 역시도 다른 이들에게 어느 노래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오늘도 환~한 미소를 지어보기로 했다. 해월당  봉려관스님의 뜻을 기리며 친정어머니께서 다니셨던 고산 월성사에 들려 부처님 전에 합장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한번 해월당 봉려관 스님을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며 다시 한번 번뇌에서 내려놓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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