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24) - 팽나무처럼 옹골찬 호법 수(樹)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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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24) - 팽나무처럼 옹골찬 호법 수(樹)가 되리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0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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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팽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큰키나무입니다. 특히 바닷바람을 좋아해서 남해의 섬 지역이나 제주도 등지에 치우쳐 분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청의 자료에 따르면, 곰솔, 후박, 동백 등을 포함한 제주의 보호수 43그루 중 팽나무는 25그루나 된다고 하니 제주사람들의 ‘폭낭’ 사랑은 여간 극진한 게 아닙니다.
애월읍 유수암리 절동산이라 불리는 곳에 수령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팽나무 군락, 한림읍 명월리 팽나무 군락, 서귀포시 성읍 일관헌 주변의 팽나무 군락, 수령 천년이 넘는 애월읍 상가리 팽나무 등이 있는데, 모두 제주도 기념물(보호수)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조천읍 교래리 정자목, 한경면 한원리 팽나무 등도 장수성長壽性과 거목성巨木性을 상징합니다. 

옛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여겨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운이 약한 곳을 보태주는 비보裨補림이나 방풍림을 조성하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절오백 당오백’이란 말이 전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당堂을 지키는 신목神木 대다수가 팽나무입니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농어촌 마을의 어귀에는 팽나무가 있고 그 아래 동네 사람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팡돌’이 있는데, 이곳은 동네 어른들의 쉼터이자 마을 내 경조사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농사 이야기 등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으로 마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팽나무는 느티나무, 소나무와 함께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대표적인 노거수로서 다른 나무들에 비해 홀로 크게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수형을 멋지게 가꾸어 스스로 빛을 내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식히는 쉼터를 제공합니다. 
백성들의 삶과 함께 자란 팽나무는 농경사회에서 결실을 가늠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 이던 옛적에 봄 가지에서 일제히 싹이 트면 비가 많아 풍년, 그렇지 못할 때는 흉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팽나무는 늦봄에 자그마한 꽃이 지고 나면 이내 초록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가을에 황적색으로 익으며 달짝지근한 맛이 있어 새들의 먹이가 되므로 새들도 팽나무를 좋아합니다.

천년을 넘게 제주사람들이 사랑받던 퐁낭들이 개발이라는 미명과 조경수로 팔리면서 마을 어귀에서 사라지거나, 팽나무 주변이 아스팔트 또는 시멘트 포장으로 복토가 되면서 잔뿌리가 죽어가고 그 결과 가지와 잎은 고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을의 혼과 공동체문화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의 잔뿌리는 동물로 치자면 음식을 먹는 ‘입’과 같아서 흙 속의 빈 곳을 찾아 파고들어 틈틈이 자리 잡은 물과 양분을 섭취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숨구멍을 무지의 사람들이 막아버리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팽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계절과 습도, 햇빛의 양 등에 따라 늘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공통의 관심사를 행함에 있어서 뭇사람의 중지를 모아야 좋은 결실을 맺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고감이 있어서 늘 한결같지 않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불법정론 · 불국정토의 구현”이란 창간 이념으로 스스로 진리의 법등法燈을 밝힘으로써 반야바라밀 국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일으키고 1989년 9월 12일 ‘제주법보’라는 제호로 제주 유일의 불교신문(월간)이 탄생하였습니다.
이후 제호가 ‘한라불교’, ‘정토신문’ 등으로 바뀌고, 발행횟수도 월간에서 격주간, 주간으로 상향되면서 일취월장을 하였으나 경영의 주체나 편집을 담당했던 기자들은 모두 떠나고 편집인 혼자 남아서 초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디어(media) 환경도 급속히 변하고 있어서 종이신문, 특히 종교지는 특수성보다 경쟁을 의식한 듯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뉴스의 속도전에서 또는 시청각의 효율성에서 불교TV나 FM라디오 방송이나 You-Tuve 등의 매체와 비견할 수 없어 구독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나마 종이신문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사부대중의 애독愛讀 덕분입니다. 
돌이켜보면, 창간 이후 전법과 신행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고자 애썼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때로는 그릇된 견해가 회오리칠 경우 채찍을 들기보다 그 단체나 회중이 스스로 자정하기를 기다려 침묵하기도 했습니다. 

“법을 의지 처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아라. 法歸依 法燈明”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법과 포교에 진력을 다하지 못한 점을 뉘우치고 수령 100년의 팽나무처럼 옹골찬 노거수의 신문으로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제주는 영남 다음으로 불교신도 숫자가 많은 지역이고, 또한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발타라 존자가 한라산 영실 존자암에 머물렀다는 문헌 기록에 비추어 보아 불연이 매우 깊은 곳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제주는 힐링(healing)의 섬으로 국·내외적 명성을 얻고 있고, 단기간 여행이 아닌 장기간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 아함경」(M3)에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법)의 상속자(후계자)가 되어야 하며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천명하셨듯이, 본지도 끊임없이 법륜을 굴리는 호법 수樹로서 위의를 지키겠습니다. 
취재와 편집에 있어 느림과 진중함을 살리되, 제주의 특수성을 부각하는 각종 문화행사를 보도하며 통섭의 지평을 펼치면서 종이신문이 갖는 독특한 생명력을 키워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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